여름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카메라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원래라면 비슷한 풍경 사진부터 먼저 정리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손이 바로 수아가 찍힌 컷들로 갔다.
몇 장 되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고 햇빛을 보던 순간,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던 순간, 웃음을 참다가 결국 입꼬리가 올라간 순간.
전부 우연히 찍힌 것처럼 자연스러운 사진들이었다.
그중 한 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카메라 속 그녀는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놀란 듯한 표정이었는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빛이 눈가에 걸려 있어서, 조금만 더 보면 금방 눈을 찡그리며 웃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그 사진을 휴대폰으로 옮겨 보냈다.
[이거요.]
메시지는 금방 읽혔다.
그리고 정말 금방 답장이 왔다.
[와.]
그다음 메시지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생각보다 진짜 괜찮네요.]
나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사진은 마음에 들어요?]
한참 뒤, 수아가 답했다.
[네.]
[근데 조금 신기해요.]
[뭐가요?]
[제가 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조금 더 좋아 보이게 나왔어요.]
나는 그 문장을 두 세번정도 읽고서는 천천히 답장을 쳤다.
그리고 천천히 답장을 쳤다.
[원래 그런 표정...]
라고 쓰다가, 나는 그대로 문장을 지워 버렸다.
너무 솔직한 것 같았다.
괜히 혼자 의미를 더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결국 다시 이렇게 보냈다.
[제가 사진을 좀 잘 찍어요^^]
이번에는 답이 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멋있네요.]
[그렇게 자신감있게 말하는 거.]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깐 웃었다.
장난스러운 말투인데도 어딘가 오래 남았고, 가벼운 농담 같은데도 자꾸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고, 대학에서는 사진을 전공했지만 결국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수아는 자기는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보는 건 좋아한다는 이야기. 더위를 싫어하면서도 여름은 좋아한다는 이야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다니지만 사실 찬 걸 잘 못 마신다는 이야기까지.
[그럼 왜 아이스커피 들고 있었어요?]
내가 묻자 수아가 답했다.
[그냥 여름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저도요.]
[근데 그런 거 있잖아요.]
[꼭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닌데 계절에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묘하게 납득했다.
수아의 말은 늘 그랬다.
설명이 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머릿속에 한 번쯤 오래 걸려 있었다.
새벽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대화가 끊겼다.
[이제 진짜 자야겠어요.]
[내일 아침에 후회할 것 같아서.]
[잘 자요.]
[현우 씨도요.]
나는 한동안 그 마지막 메시지를 내려다봤다.
현우 씨.
방금 알게 된 이름을 이미 여러 번 불러 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적혀 있는 두 글자였다. 그걸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 같다는 착각이 조금 들었다.
다음 날, 회사에서는 평소처럼 일이 쏟아졌다.
오전 회의가 있었고, 수정해야 할 자료가 있었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급하게 처리해야 할 메일이 몇 개 더 와 있었다.
일은 바빴지만, 이상하게 하루가 평소보다 덜 무겁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수아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점심 맛없는 거 드셨어요?]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웃었다.
[왜 맛없는 걸 전제로 해요?]
[회사 점심은 원래 대체로 그렇잖아요.]
[꽤 편견 있는데요.]
[경험에서 나온 추측입니다.]
[수아 씨는요?]
[저는 생각보다 괜찮은 거 먹었어요.]
[근데 생각보다 괜찮은 게 생각보다 많지는 않더라고요.]
[생각보다라는 말 진짜 좋아하네요.]
[너무 확실한 건 조금 무서워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어딘가 진심 같아서였다. 나는 결국 간단하게만 답했다.
[그럴 수도 있죠.]
수아는 한참 뒤에 답장을 보냈다.
[현우 씨는 생각보다 다정하네요.]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괜히 곧장 답장을 보내면 너무 티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그 문장을 여러 번 따라 읽고 있었다. 생각보다 다정하네요.
그날 퇴근 후, 집에 들어가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특별히 찍고 싶은 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지 않았다.
저녁 빛이 골목 벽면에 길게 걸쳐 있었고, 가게 유리창마다 다른 색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셔터를 몇 번 누르다가 문득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도 햇빛 좋아해요?]
보내고 나서 조금 뜬금없었나 싶었다.
하지만 수아는 늘 그랬듯 금방 답했다.
[좋아하죠.]
[해 질 때 빛은 더 좋아해요.]
[왜요?]
[조금 덜 뜨겁잖아요.]
나는 그 답장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한낮처럼 맹렬하지는 않지만, 대신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색의 빛이었다.
[그럼 지금 나와 보면 되겠네요.]
문장을 보내고 나서야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달았다.
나는 원래 이런 식으로 사람을 쉽게 부르는 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직은 서툴러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였는데.
메시지는 바로 읽혔다.
답장은 생각보다 늦게 왔다.
[그건]
[생각보다 좋은 제안인데요.]
나는 괜히 손에 든 휴대폰을 한 번 고쳐 잡았다.
[그럼요?]
다시 시간이 조금 비었다.
어쩐지 답장이 오기 전까지 주변 소리들이 지나치게 또렷하게 들렸다. 차 지나가는 소리, 횡단보도 신호음, 멀리서 누군가 웃는 소리. 그러다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삼십 분 뒤에 가능해요.]
나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늦지 않게 올게요.]
우리는 그날 다시 만났다.
처음 만난 공원의 근처 작은 하천 산책로였다.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물 위로 빛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낮의 더위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견딜 만한 정도였다.
그녀는 먼저 와 있었다.
난간 옆에 서서 물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내가 다가가자 천천히 돌아봤다.
낮에 봤을 때와는 조금 다른 얼굴이었다. 햇빛이 아니라 노을에 물든 얼굴. 한낮보다 조용하고, 그래서 더 오래 보게 되는 얼굴.
“빨리 왔네요.”
내가 말하자 수아가 웃었다.
“현우 씨도요.”
“먼저 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 원래 약속보다 조금 일찍 오는 편이에요.”
“좋은 습관이네요.”
“상대방 기다리게 하는 거 싫어서요.”
수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다시 물 위로 내렸다.
아주 짧은 말이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애다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함께 걷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수아는 말이 자연스러웠고, 나는 그런 리듬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카메라는 항상 들고다니나봐요?”
“아.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집에서 바로 카메라만 가지고 나왔어요.”
“사진찍는걸 엄청 좋아하시네요.”
“수아 씨는요?”
“저는... 저녁 산책 좋아해요. 혼자도 자주 해요.”
“혼자서요?”
“네. 생각 정리하기 좋거든요.”
나는 잠깐 수아를 봤다.
그러고 보니 그 애는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도 편안했지만, 혼자인 시간도 잘 견디는 사람. 어쩌면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해요?”
내가 묻자 수아는 조금 웃었다.
“그냥, 오늘 날씨 어땠는지, 점심 맛없었는지, 지나가는 강아지가 귀여웠는지.”
“그런 걸 정리해요?”
“그런 걸 안 잊으려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걸음을 조금 늦췄다.
잊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이 어딘가 오래 남았다. 그녀는 지나가는 빛이나 짧게 들은 말 한마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의 조각 같은 것처럼 사소한것들을 좋아하는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수아와 있으면 나도 자꾸 사소한 걸 더 보게 됐다.
하천 옆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마지막 빛, 물 위를 떠다니다 금방 사라지는 반짝임, 걷다가 스치듯 닿는 어깨 거리까지. 그런 것들이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현우 씨.”
“네.”
“사진 안 찍어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 맞다.”
수아가 웃었다.
“오늘은 안 찍나 했어요.”
나는 카메라를 들어 수아 쪽으로 겨누었다.
수아는 이번엔 자세를 잡지 않았다. 대신 나를 보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노을 쪽을 바라봤다. 그게 더 수아다웠다. 의식하지 않을 때 더 자연스러운 사람.
찰칵.
셔터 소리가 짧게 울렸다.
수아는 그대로 물었다.
“잘 나왔어요?”
“생각보다요.”
수아가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 이제 현우 씨가 더 많이 쓰는 것 같은데요?”
“옮았나 보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다시 찍고 싶어졌다. 웃음이 남아 있는 눈, 조금 풀어진 입꼬리, 해가 거의 사라지는 순간의 부드러운 빛.
그날 나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장 오래 보게 된 건, 수아가 노을을 바라보다가 내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순간의 사진이었다.
빛이 많이 약해져서 완벽한 사진은 아니었다.
조금 흔들렸고, 초점도 아주 정확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좋았다.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가짜 같은 사진보다, 조금 흔들려서 그 순간이 더 진짜처럼 남는 사진이 있었다.
수아는 내 옆에서 액정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건 조금 흔들렸네요.”
“그러게요.”
“근데 전 이게 더 좋은데.”
“왜요?”
수아는 액정 속 사진을 보며 대답했다.
“진짜 같아서요.”
나는 수아를 돌아봤다.
수아는 여전히 사진을 보고 있었고, 얼굴에는 아주 옅은 웃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이 사람을 생각보다 오래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때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정도로 솔직하지는 못했다.
대신 그냥, 수아가 좋아한다는 조금 흔들린 사진을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사진 파일을 정리하면서 또 하나의 폴더를 만들었다.
여름_생각보다_오래
그 이름을 붙이고 나서 나도 조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