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싫다-4-

여름

by 진하준

그때부터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만났다.

처음에는 정말 별것 아닌 이유였다. 퇴근길에 하늘 색이 예쁘다며 사진을 보내오거나, 점심시간에 회사 밥이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메시지가 오거나, 길에서 이상한 간판을 봤다는 둥, 편의점에서 새로 나온 음료 이름이 너무 성의 없다는 둥.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나는 원래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굳이 찾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누군가와 하루 종일 대화를 이어 가는 일은 가끔 피곤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수아와는 이상하게 달랐다.

수아는 매일 꼬박꼬박 연락을 확인받으려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쯤 답이 늦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괜히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지도 않았고, 관계를 확인하려 들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늘 대화를 이어 오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내 하루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너무 더워요.]

나는 손잡이를 붙든 채 답장을 보냈다.

[이제 시작인데요.]

[그러니까 더 싫어요.]
[벌써 지쳤어요.]

나는 웃으며 다시 쳤다.

[여름 좋아한다면서요.]

메시지는 금방 읽혔지만 답장은 조금 늦게 왔다.

[좋아하는 거랑 잘 버티는 건 다른 문제죠.]

나는 한참 그 문장을 내려다봤다. 수아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잘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애초에 수아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좋고 싫음을 간단히 나누지 않았다.
좋아하지만 힘들 수 있고, 싫어도 놓치고 싶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럼 오늘은 뭐가 좋아요?]

내가 묻자 한참 뒤에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노을이 막 내려앉기 시작한 하늘 사진이었다. 구름 끝이 연한 주황빛으로 번지고 있었고, 건물 옥상 위로 저녁 빛이 얇게 걸려 있었다.



[이거요.]
[이건 좋아요.]

나는 그 사진을 한동안 화면에 띄워 둔 채 바라봤다. 특별히 잘 찍힌 사진은 아니었다.

구도도 조금 어설펐고, 초점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보게 됐다.

꼭 수아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가 사진 안에 같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였다.

[생각보다 잘 찍는데요.]

수아가 바로 답했다.

[아니거든요.]
[현우 씨가 찍는 사진이랑은 달라요.]

[뭐가 다른데요?]

[저는 그냥 예쁜 걸 보면 찍는 거고]
[현우 씨는 남겨 두려고 찍는 것 같아요.]

나는 손가락을 멈췄다.

남겨 두려고 찍는 것 같다는 말.

나는 사진을 좋아했지만 왜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빛이 괜찮으면 셔터를 누르고, 눈에 걸리는 걸 찍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수아는 꼭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먼저 알아보는 사람 같았다.

[그런가요.]

[네.]
[그런 느낌 들어요.]

그 후로도 우리는 종종 만났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주말 오후에 카페에 앉아 두 시간쯤 얘기하고 헤어지는 날도 있었고, 저녁을 먹고 동네를 조금 걷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날도 있었다.

가끔은 약속을 잡고 나와서도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같이 걷기만 했다.

신기하게도 수아와 있으면 그런 시간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수아는 사소한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카페 창문에 빗방울이 맺히면 그것만 한참 보고 있었고, 길가 화단에 핀 작은 꽃 하나에도 걸음을 멈췄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귀엽다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기도 했고, 편의점 냉장고 안에 신기한 맛의 음료가 있으면 꼭 웃었다.

“왜 웃어요?”

내가 물으면 수아는 늘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이상하잖아요.”

“뭐가요?”

“복숭아 맛 우유에 소금 들어간 거요.”

“그게 왜요?”

“왠지 너무 열심히 조합한 느낌이라.”

그 말에 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

수아는 사소한 것에도 금방 의미를 붙였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장면에도 자기만의 이유를 찾았다. 그래서 수아와 같이 있으면 세상이 조금 더 자주 눈에 들어왔다.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주말 오후, 우리는 강변 근처를 걷고 있었다. 날씨가 꽤 더웠고 햇빛도 강했다. 나는 벌써 조금 지쳐 있었는데, 수아는 난간에 기대어 물 위로 반짝이는 빛을 보고 있었다.

그늘이라고 해 봐야 나무 그림자가 얇게 걸친 정도라, 서 있기만 해도 등에 땀이 찼다.

“안 더워요?”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워요.”

“근데 왜 그렇게 멀쩡해 보여요?”

“멀쩡한 척하는 거예요.”

나는 웃었다.

“굳이 왜요?”

수아는 잠깐 나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야 현우 씨도 조금 덜 더워할 것 같아서.”

장난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마음 한쪽에 오래 걸렸다.

그녀는 가끔 그런 말을 했다. 꼭 대단한 위로처럼 들리지는 않는데, 나중에 혼자 생각해 보면 자꾸 꺼내 보게 되는 말.

그날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수아는 난간에 팔을 걸친 채 물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흩어졌다. 나는 무심코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또 찍었어요?”

“네.”

“요즘 너무 자주 찍는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수아는 웃었다.

“그 말, 이제 현우 씨 거 됐네요.”

나는 액정을 힐끗 보며 말했다.

“누구 덕분에요.”

수아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이번엔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거봐요.”

“뭐가요.”

“제가 은근히 좋은 영향을 주잖아요.”

나는 대꾸하지 않고 액정을 돌려 보여 줬다. 그녀는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잠깐 조용해졌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현우 씨가 찍으면 제가 조금 다르게 보여요.”

“어떻게요?”

수아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저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진짜 같았다.

그녀는 장난을 칠 때도 많았지만, 가끔 이렇게 무심하게 속마음 비슷한 걸 흘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을 고르느라 조금 늦어졌다.

“원래 괜찮은 사람이라 그런 거예요.”

말이 먼저 나가고 나서야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달았다.

그녀도 잠깐 나를 봤다. 햇빛 때문에 눈이 반쯤 가늘어진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웃었다.

“현우 씨는 가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 하네요.”

“가끔이요?”

“네. 가끔.”

그 뒤로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여름의 오후는 길고 느렸다. 햇빛은 여전했고, 공기는 뜨거웠고, 물 위에서는 빛이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견딜 만했다.

그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날씨의 결이 조금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수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왜요?”

“잠깐만요.”

그리고는 길가 편의점 앞으로 돌아가 냉장고 안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한참 뒤에 작은 컵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나왔다.

“갑자기요?”

“이럴 때 먹어야 맛있잖아요.”

“아까 더위 싫다면서요.”

“싫은데, 여름에만 먹으면 맛있는 게 있긴 하죠.”

그러고는 내게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포장을 뜯으며 물었다.

“수아 씨는 원래 이렇게 모순이 많아요?”

“사람이 원래 좀 그래요.”

“되게 당당하게 말하네요.”

“현우 씨는 아니에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생각보다 단순한 편인데요.”

그녀는 한 숟갈 떠먹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왜요?”

“현우 씨는 단순한 척하는 것 같아요.”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그냥 느낌이요.”

“수아 씨는 느낌으로 말하는 게 너무 많아요.”

“대신 꽤 잘 맞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었다.
가끔 나보다 더 빨리 내 상태를 알아챘다. 내가 오늘 피곤한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겉으로는 별 티를 안 내도 기분이 조금 가라앉아 있는지를 이상할 만큼 잘 봤다.

한 번은 카페에서 그런 적이 있었다.

나는 회사 일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크게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평소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더니 뜬금없이 말했다.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죠.”

나는 깜짝놀라서 그녀를 봤다.

“티 났어요?”

“조금요.”

“또 조금이네요.”

“현우 씨는 원래 아닌 척하는데,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요.”

나는 웃지도 못하고 커피잔만 내려다봤다. 그녀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말 안 해도 돼요.”

“아니에요. 그냥… 회사에서 좀 피곤했어요.”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러고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카페를 나올 때 계산대 옆에 놓인 작은 사탕 두 개를 집어 내 손에 쥐여 줬다.

“이건 왜요?”

“기분 안 좋을 때 단 거 먹으면 조금 낫잖아요.”

“수아 씨는 내가 애 같아요?”

“아니요.”

“그럼요?”

그녀는 내 손바닥 위 사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경 쓰이는 사람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더 오래 남는 말이었다. 신경 쓰이는 사람. 그 정도의 거리와 무게를 정확히 알고 고른 말 같아서, 더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괜히 사탕 껍질 모서리만 만지작거렸다. 수아는 그런 내 반응이 재밌는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가, 곧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요.”

밖에는 아직 여름빛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저물지 않은 저녁이었다.

“왜 그렇게 멍해 있어요?”

“방금…”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수아가 웃었다.

“부담 가지라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걸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해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데.”

나는 걸음을 멈췄다.

“네?”

그녀는 아주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곧 평소처럼 웃었다.

“현우 씨 반응 보는게 재밌어요.”

그 말로 넘어가 버렸지만, 나는 그 짧은 틈을 오래 기억했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말하던 순간의 표정. 장난기보다 다른 감정이 잠깐 스쳐 간 얼굴.

여름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낮의 햇빛은 더 강해졌고, 밤공기마저 쉽게 식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덥다고 말했지만, 수아는 그런 날들 속에서도 자주 웃었다.

힘들다, 덥다, 지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하늘을 올려다보고, 빛이 예쁘다고 말하고,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꾸 생각했다.

이 사람은 왜 여름을 좋아할까.
이토록 더워하고, 금방 지치고, 땀을 닦으면서도 왜 끝내 여름이 좋다고 말할까.

그 답을 그때는 아직 몰랐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 여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여름이 싫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