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싫다-7-

여름

by 진하준


수아의 노트는 생각보다 빨리 두꺼워졌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줄쯤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커피가 너무 쓰지 않았는지,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왜 마음에 남았는지 같은 것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안에는 조금 더 많은 날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같이 걷던 저녁,

카페 창가에 오래 걸려 있던 빛,

내가 찍어 준 사진,

수아가 혼자 보냈을 오후.

그 애는 정말 사소한 걸 남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사진으로 하고, 수아는 문장으로 했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가, 다시 가을이 오고, 어느새 겨울이 지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어색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너무 당연해졌다.

약속을 잡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고, 헤어질 땐 늘 다음을 먼저 생각했다.

나는 그때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오래 계속될 줄 알았다.

물론 수아가 원래 몸이 약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계단을 빨리 오르면 남들보다 조금 더 숨이 찼고, 더운 날엔 금방 지쳤다.

손끝이 자주 차가웠고, 가끔은 멀쩡히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기운이 빠진 사람처럼 조용해질 때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걸 그냥 그런 사람의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수아도 그랬다.

“원래 내가 좀 저질 체력이잖아.”

그 애는 늘 그렇게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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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말을 믿었다.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봄이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처음엔 정말 별거 아니었다.


같이 걷다가 평소보다 조금 자주 멈춰 서는 것, 밥을 다 먹고도 금방 피곤해 보이는 것, 카페 계단을 올라가면서 괜히 한 손으로 난간을 짚는 것.


그런 건 얼마든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번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니까, 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까지 눈에 들어왔다.

웃고 있는데 입술 색이 유난히 옅어 보이는 날,

손을 잡았을 때 생각보다 차가운 날,

예전 같으면 그냥 덥다고 했을 순간에, 말없이 숨을 고르는 날.

나는 몇 번이나 병원에 가 보자고 했다.


“그냥 검사 한 번만 받아 보자.”

그럴 때마다 수아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아. 그냥 요즘 좀 피곤해서 그래.”


“그 말 한 달째 하고 있거든.”


“한 달은 아니고.”


“비슷해.”

수아는 그럴 때마다 시선을 피하다가도 결국 내 손을 한번 쥐었다.

“진짜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이 꼭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처럼 들려서 더 마음에 걸렸다.

결국 먼저 심각해진 건 나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영화관 쪽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횡단보도를 건넌 뒤 수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처음엔 신호등이 바뀌는 걸 놓쳤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애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왜 그래?”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수아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창백하다는 말이 너무 흔해서 싫을 정도로, 정말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손등으로 입가를 한번 짚더니 괜찮다고 하려는 것 같았는데,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눈치였다.

“수아야!”

내가 다시 부르자 아주 작게 말했다.

“잠깐만.”

그 짧은 두 글자가 이상하게 무서웠다.

나는 곧바로 근처 벤치로 데려갔다.

가만히 앉아 물을 마시고 나서야 조금 나아진 것 같았지만, 그날은 결국 영화도 못 보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주말에도 진료하는 큰 병원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고,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계속 시계를 봤다.

반대로 수아는 너무 조용했다.

그게 더 불안했다.

“진짜 괜찮아?”

한참 뒤에 묻자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괜찮아 보여.”

수아는 그 말에 작게 웃었다.

“지금은 좀 괜찮아.”

“제발 좀...”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딱딱했는지, 수아가 잠깐 나를 봤다.

화낸 것도 아닌데 꼭 내가 괜히 예민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뒤늦게 한숨을 삼켰다.

“미안. 그냥 놀라서 그래.”


수아는 아무 말 없이 내 손등을 한번 만졌다.

차가운 손이었다.

그날 응급으로 받을 수 있는 검사 몇 개만 하고 돌아왔다.

의사는 심장 쪽도 한번 제대로 확인해 보자고 했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체력 문제로 넘길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 예약 날짜를 받아 들고 병원을 나왔다.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병원 유리문 밖으로 저녁빛이 묽게 퍼져 있었고, 차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세상은 원래 늘 그랬다.

누군가의 마음이 얼마나 급하게 무너지는지와 상관없이, 밖의 시간은 평소를 유지했다.


“현우야.”

수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응.”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람은 오히려 더 걱정하게 된다.

“검사해 보면 알겠지.”

겨우 그렇게 말하자 수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뒤 며칠 동안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척 지냈다.


밥도 먹고, 메시지도 주고받고, 가끔은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분명히 달라진 게 있었다. 우리는 약속된 검사 날짜를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세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 있어도 자꾸 휴대폰을 봤다.

수아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날 이후로는 예전처럼 쉽게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검사받으러 가는 날, 수아는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내가 더 말이 없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수아는 창밖만 보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손가락으로 카메라 스트랩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들고 나오지도 않은 카메라였는데 버릇처럼 그 감촉이 떠올랐다.

“너무 심각한 얼굴 하지 마.”

수아가 창밖을 보다가 말했다.

“나 지금 그런가?”


“응. 엄청.”


“안 그러려고 했는데.”


“알아.”


수아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검사는 생각보다 길었다.

심전도, 초음파, 피검사, 이름도 잘 모르는 몇 가지 확인들.


병원 복도를 오가고 대기실에 앉아 있고 다시 불려 들어가는 동안,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수아는 처음보다 더 조용해졌다. 농담도 줄었고, 괜찮다는 말도 덜 했다.


결과는 며칠 뒤에 들으러 왔다.

진료실은 이상할 만큼 환했다.


창문 쪽 블라인드 사이로 오후 빛이 얇게 들어오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정리된 서류와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한 장씩 넘겨 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처음 몇 문장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한 체력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심장 쪽에 이상이 보입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기억나는 건 그 정도였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정확한 병명보다 먼저 귀에 들어온 건 ‘심장’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그 뒤부터는 의사가 무슨 설명을 덧붙였는지, 얼마나 조심해야 하고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고 무엇은 안 되는지 같은 말들이 전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옆을 돌아봤을 때 수아는 생각보다 차분한 얼굴이었다.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울지도 않았다.

그냥 입술을 꼭 다문 채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오히려 더 아득해졌다.

진료실을 나오고도 우리는 한참 말을 못 했다.

병원 복도 끝 자판기 앞까지 와서야 수아가 멈췄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받아 건넸고, 수아는 받아 들고도 바로 마시지 않았다.

투명한 물 표면만 가만히 내려다봤다.

“현우야.”

아주 작게 부르는 목소리였다.

“응.”


“나 좀 무섭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제야 현실이 조금 실감났다.

진료실 안에서 끝까지 울지 않던 사람이, 밖에 나와서 겨우 내게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 말이 너무 조용해서 더 아팠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아질 거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고, 별일 아닐 거라고 거짓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참 망설이다가 겨우 말했다.

“같이 하자.”

수아가 나를 봤다.

“뭐를.”

“병원 다니는 것도, 검사받는 것도, 무서운 것도.”

말하고 나니 너무 서툰 문장 같았다.


그런데 수아는 한동안 나를 보다가, 아주 조금 웃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약한 웃음이었다.

“너 원래 이런 말 잘 못하잖아.”


“지금도 잘 못했어.”


“응 맞아”

그 말에 나도 따라 웃었다.

웃음이 나와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봄 끝자락인데도 수아 손은 평소보다 더 차가웠고, 나는 그 손을 놓지 않고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에 설 때도, 나는 자꾸만 수아 쪽을 먼저 보게 됐다.

열차를 기다리다가 수아가 말했다.

“나 그냥 몸 약한 줄만 알았는데.”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조용히 듣기만 했다.

“엄마도 맨날 체력 기르라 그랬고, 나도 그냥 그런 줄 알았어.”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 안에 억울함이 있었는지, 슬픔이 있었는지, 아직은 나도 잘 구분할 수 없었다.




“현우야.”


“응.”


“앞으로 어떡하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열차 불빛이 멀리서 번졌다.

나는 그 빛을 보다가 다시 수아를 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일단 같이 알아보자.”

그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 나는 한 번도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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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하늘도, 불빛도, 횡단보도도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누워 있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머릿속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밤늦게 수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자?]

나는 곧바로 답했다.

[아니.]

한참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나 오늘 일기 못 쓰겠어.]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이상하게 내려앉았다.

매일은 아니어도, 적어도 중요한 날이면 꼭 노트를 펼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못 쓰겠다고 했다.

그 말 하나가 오늘의 무게를 전부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오늘은 안 써도 돼.]

잠시 뒤, 수아가 다시 보냈다.

[근데 안 쓰면 진짜 있었던 일 같을 것 같아.]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것도 같고, 끝까지는 모를 것도 같았다.

너무 무서운 날은 오히려 기록해야 현실이 되는 건지, 아니면 기록해야 겨우 견딜 수 있는 건지.

수아는 아마 그 둘 다였을 것이다.

결국 그날 밤 늦게, 짧은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그래도 써 볼게.]

[생각보다 길게는 못 쓰겠지만.]

나는 그제야 아주 조금 안심했다.

수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서운 날에도, 버거운 날에도, 끝내 오늘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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