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다
자리가 비어있다. 죽음을 암시한다. 그 앞에서 여주인공이 찍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남주인공은 빈자리를 받아들이며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난다.
상상 속 장면에서 여주인공은 하늘나라에 먼저 간 엄마에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는 떠날 때 안 무서웠어"
그러자 엄마는 "죽음이 무서운 건지 아픈 건지 행복한 건지 잘 모르겠네"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놔줘야 하는 것이 무서워"라고 말한다. 어쩌면 죽음을 앞둔 사람의 두려움이 담긴 말일 것이다. 이 말에는 남주인공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도 포함이 되어 있다.
여주인공은 울고 있는 친구에게 "재밌게 살 거지? 내가 없어서 미안해" 라며 자신이 죽은 뒤의 상황을 도리어 사과한다. ['우리영화'드라마 대사중 일부 인용]
젊은 시절에는 주변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떠날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지 못했다. 그때는 나의 죽음과 연결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생각이 든다. 살기보다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나이로 접어들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고민과 자세를 가지게 된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 둔 90세가 넘으신 친정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하루 종일 치매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먼저 말을 걸지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으신다. 당신의 익숙한 집에서 주무시고 식사하고 TV를 보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전부이다. 사실은 그것마저도 엄마에게는 커다란 일이다. '아직도 살아있다니 징그럽다'라고 하시지만 엄마는 아신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의 긍정적이고 활동적이셨던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기도한다. "하느님 엄마가 편안히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고운 죽음으로 가실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긴 세월 치열했던 시간
이제는 고운 죽음 벗 삼아
영육으로 사라지는
고귀하고 숭고한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을>
[작가의 시 일부를 발췌 / '고운 죽음'이란 단어는 박완서의 저서에서 표현]
남은 삶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기회와 남은 이들에게 이별 인사를 잘할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한 것이다.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우리는 허비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마지막이 결국 죽음인 것을 우리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귀다툼을 하며 산다.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가져가지도 못할 물질에 욕심내고...... 시간이 부족한 줄도 모르고.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기에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한정된 시간여행을 한다면 우리는 귀한 시간을 소중히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