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산책로
직장 때문에 이사를 와서 이 동네에서 산 지 4년이 넘었다. 오늘은 직장이 연차라 시간에 쫓기지 않았고, 비도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스콘을 잘하는 카페가 있어 호기심에 안 가던 길로 찾아가 보았다.
이 동네를 살면서 가보지 않았던 길. 조용하고 나무가 우거진 고즈넉한 산책로가 있었다. 이런 길도 모르고 4년이라는 시간을 쫓기고 살았구나, 어찌 그리 바쁘게 살았나 싶었다.
새삼 이곳에서 지나간 시간이 생각났다. 이사를 오면서도 이 동네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마지못해 자리를 잡았지만, 긴 시간 동안 직장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정을 붙이지 않았다.
직전에 살았던 동네는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였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은 온갖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고, 동네의 뒷골목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치워야 할 정도로 좁고 열악한 곳이었다. 양면성을 지닌 동네였다. 그런데 그런 양면성이 나는 좋았다.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고층빌딩이 아닌 뒷골목이었다. 비록 좁고 비탈지고 때론 지저분할지라도 뒷골목이 주는 사람의 냄새가 있었다. 일정하지 않은 집의 모양과 보도블록, 오래된 백반집, 내공이 느껴지는 수선집 등 동네의 모든 것들이 나의 친구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곳을 떠나 이사 온 이곳이 정이 들지 않았던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왠지 이 동네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는데..
키우는 식물, 가족 같은 동물, 애착을 가지는 물건 등 숨을 쉬는 생명뿐만 아니라 사물도 나와 통하는 우주의 기운이 있다고 한다. 미신적 일지는 모르나 때론 우리는 그것으로 위로를 받고 있다. 아마도 전에 살던 동네에서 우주의 기운을 너무 많이 받아 이사 온 이곳에 정을 붙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과테말라의 원주민에게서 유래된 걱정인형이라는 인형이 있다. 밤에 잠들기 전에 걱정을 인형에게 속삭이고 베개 밑에 두면 인형이 걱정을 대신 가져가 준다고 한다. 비록 하나의 역사나 전통이지만 그 유래가 현대인들에게 위안이 된다는 생각에 요즘 공예품을 만들 때 많이 응용되고 있다.
TV에서 어떤 연예인이 자신의 자동차에 애착을 가지고 애칭을 부르는 것을 보았다. 정성을 다해 세차하고 운전도 험하지 않게 하는 것을 보면서 유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물에 대한 애정이 곧 나에 대한 애정이 아닌가 싶다. 다른 생명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의 정신이 정갈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내일이면 이사를 한다. 이 동네를 떠날 시간이 이제 24시간도 남지 않았지만 아무 탈 없이 살게 해 준 것에 감사한다. 다시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는데 그곳에서도 이곳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이 동네를 지나가는 일이 있다면 반갑고 애틋한 마음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