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
어려움이 있던 시기 혼자 아무도 없는 성당에 가서 울며 기도한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그냥 좋았다. 고요한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침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요즘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면 그 공간의 기운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나면 지하 깊숙한 방공호로 대피하듯 그곳이 나를 보호해 주는 느낌이다. 신께 의지한다는 궁극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하수선한 세상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안심이 된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감당하기 힘들어 숨을 내뱉고 싶지만 쉬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겪고 나면 우리에게는 큰 상처가 남는다.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때때로 통증으로 다가온다.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모래알만 한 숨구멍이라도 있다면 아마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알게 된 가수 성시경의 고등학교 친구 A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A는 고1 때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을 하였다.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A의 아버지가 나와 당시의 아픔을 얘기하고 현재 학교폭력에 고통받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서술하는 것이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므로 글로 남긴다)
A는 친구들의 괴롭힘이 있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죽음을 선택하였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A는 자신의 방을 깨끗이 정돈하였다. 사진을 통해서만 보았지만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어린 학생이지만 자신의 가는 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A는 한 번이 아닌 두 번의 투신을 하였다. 한 번의 투신으로 목숨이 끊기지 않자, 다친 몸을 이끌고 다시 아파트로 올라가 두 번째 투신을 하였다고 한다. 믿기지가 않았다. 한 번으로 안 되면 포기할 법한데 어떠한 마음이었기에 어린 친구가 두 번이나 투신을 한 것인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떠나던 마지막날 어머니의 장바구니를 집까지 들어주며 부모에 대한 죄송함을 잊지 않은 친구였다. 영정사진에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무엇이 이 아이를 죽음으로 이르게 했나 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A의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고 해결해 주었으며 A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유독 그 친구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 것은 성시경의 노래를 내가 좋아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성시경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사와 음색이 그 친구를 애도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작가 개인의 생각)
눈물아 너무 잘 참아줬어 마지막까지 정말 참 잘했어
니가 꼭 참아줘서 저기 내 사랑 편하게 떠나고 있어
그래 입술아 너도 잘했어 가지 말라고 말했으면
아마 저 사람 계속 아파하면서 내 옆에 남았을 거야
그냥 계속 가세요 왜 자꾸 멈춰 서요
안녕 안녕 안녕 제발 돌아보지 말아요
눈물이 흘러내리는 내 슬픈 얼굴 보여주기 싫어요
제발 계속 걸어요 왜 자꾸 돌아봐요
안녕 안녕 안녕 너무 갖고 싶은 내 사랑
사랑도 슬픈 이별도 모두 잊고 행복하세요
제발 제발 제발 자꾸 돌아보지 말아요
당신을 잡고 싶다는 내 슬픈 손을 말릴 수가 없어요
입술아 이제는 사랑한다고 애기해도 괜찮아 [성시경의 '안녕' 노래 가사]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방공호가 필요하다. 각자의 방공호에서 나의 크기만큼 세상의 어려움을 잘 이겨낸다면 방공호를 벗어나는 시기는 언제든 올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 한걸음을 내딛기만 한다면 그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낸 그 용기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나의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특별한 방공호를 찾지 않아도 세상이 나의 능력만큼 나의 크기만큼 살아갈 수 있는 방공호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