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범(?)행동
"모두가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 주십시오. 나의 배려가 모두를 기분 좋게 합니다."
지하철 안내방송 중 가장 공감되는 멘트였다. 나는 지하철로 2시간 넘는 거리를 이동 중이었다. 출근 시간대라 사람들이 많아 자리가 나질 않았다. 출근시간대에 처음 타보는 당고개행 4호선 열차였다. 내가 출근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오늘만 견디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기를 거의 40분가량을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리가 아파 자리를 둘러보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좌석 양 옆으로 임산부 배려석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임산부 같아 보이지 않는 젊은 여성 둘이 앉아 있었다. 얼마나 힘들면 체면 불고하고 그 자리에 앉았을까 하는 생각에 신경을 안 쓰려고 했다. 단지 다른 곳에 자리가 나길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웬만하면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이면 같은 여자로서 임신을 하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배려하는 것이고, 남자는 남자대로 노약자석도 아니고 임산부석에 앉기에는 남자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리가 정말 나지 않았다. 나는 서 있는 게 힘들어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옆 사람들은 서 있는 앞의 자리가 비어서 다들 앉는 것이었다. 조금씩 인내심의 한계가 발동하여 나는 다리를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내 양 옆으로는 30대 정도의 젊은 여성들이 서 있었다.
드디어 자리가 비었다. 그런데 하필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내가 가서 앉을 수 있는 위치였지만 나는 앉지 않았다. 물론 주변의 여성들도 앉지 않았다. 주변의 여성들은 내가 나이가 좀 있으니 앉으라는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앉지 않자 약간 '괜찮은 아줌마네'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힘들지만 뿌듯함이 느껴졌다. 나로 인해 사회적 규범을 젊은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 것 같아서였다. 별거 아닌 거에 우리는 공주병이 발동한다. 그러던 순간 어디선가 쏜살같이 젊은 여성이 우리를 휘감고 돌아서 그 자리에 앉았다. 나는 '뭐야 나도 안 앉았는데'라고 속으로 외치며 그 여성이 철면피라고 생각했다. 내 옆의 여성들도 약간 겸연쩍어하는 느낌이 있었다.
예전에 콩나물시루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둘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서 있는 사람에게 공간을 내어줘야 했기에 나는 임산부 배려석에 떠밀리듯 앉아버렸다. 사람들이 많아서 앉기는 했지만 좌불안석이었다. 이런 열악한 지하철에 임산부가 타서도 안되지만 혹시라도 임산부가 있는데 내가 앉아 있는 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었다. 그때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내 자리 옆쪽으로 기둥을 붙들고 어떤 여성이 뒷사람의 압력으로 몸이 눌리며 서 있었다. 그때 그 여성의 배가 나의 얼굴 쪽으로 '까꿍' 하며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몸은 전체적으로 마른 몸인데 배만 유독 나와 있는 것이다. "아뿔싸! 임산부구나."라는 생각에 무안함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사람이 많아 내가 일어나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나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일어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해서 그 여성에게 소리를 내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 임신을 하였냐는 액션을 취했다. 내가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 여성은 표정이 싸해지면서 나에게 아니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으아! 이건 더 최악이다." 나는 그 여성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임신이 아니라 배가 나온 것이었다. 나의 배려가 지나쳐 다른 사람을 인신공격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랬던 내가 그 뒤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수 있었을까. 차라리 서서 가는 편이 나았다. 나는 멀리서 와서 앉은 그 젊은 여성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뻔뻔스럽게 와서 앉을까 애처로운 마음에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지면서 바로 반대편 자리가 나서 바로 가서 앉았다. 아줌마들이 자리만 나면 번개같이 날아와 앉는 모습이 싫어서 나는 자리가 나도 천천히 가서 앉는 편인데, 이번은 번개같이 앉았다. 앉으니 편안하고 그제야 앞의 그 여성이 보였다. "어머나" 이번에도 나는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보니 그 여성은 배가 안 나온 임산부였던 것이다. 임산부 표시를 지니고 있었다. 서서 있다 보니 그것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너~~무 미안해서 스스로 자책을 하였다. 하지만 자책도 잠시 그나마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으니 그 임산부가 바로 와서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경험이 있으면 누구든 왜 자리를 비워 놓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지하철의 멘트처럼 단순히 기분 좋은 것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서와 배려를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우리가 왜 규칙이라는 것을 정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상황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순간 자리에 앉지 않았던 내 옆의 여성 동지들에게도 함께 이 뿌듯함을 전하고 싶다. 그녀들은 이미 내리고 없었기 때문이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대학 강연에서 '비공식적 규범'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새삼 그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교육받았던 규범이 아닌 우리 사회 안에서 조용히 실천하는 '비공식적인 규범'이 진짜 우리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