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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나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by 조은주

지하상가를 지나던 중이었다. 지하상가를 나오려던 순간 요즘은 흔치 않은 설문조사를 한다며 어떤 분이 다가왔다. 설문조사라기보다는 왠지 '도를 아십니까'의 버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기보다 얼굴을 보며 만만한 사람을 찾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종로를 지날 때 도를 아십니까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인상이 좋다며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다. 순진할 때라 멋모르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고등학교 동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친구의 친구였다. 얼굴만 아는 정도. 반가운 마음에 서로 아는 척을 했지만 그 친구는 반가운 마음보다 먹잇감을 찾은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교를 빌미로 자신의 절박함을 얘기하고 있었다. 바로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내 직장으로 찾아와 절박함을 이유로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때 잘살던 친구였다. 얼마의 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빌려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박하다고 찾아온 친구를 돌려보낼 수는 없어서 빌려주지 않고 내가 줄 수 있는 얼마의 돈을 그냥 주었다. 그 이후로 그 친구는 바로 연락을 끊어 버렸다.


그랬던 과거의 기억이 있기에 지하상가의 설문 조사원에게 반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설문조사라면서 허접한 손바닥만 한 종이를 들고 취미가 무엇이냐며 몇 가지 항목을 보이며 쫓아왔다. 그러면서 귀에 놓는 침을 얘기하며 나의 오른쪽 귀를 만지면서 자세히 보려고 했다. 나는 그분이 여성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사실 기분이 나빴다. 남의 신체를 허락도 없이 함부로 만지다니. '어 내 몸인데'라는 속마음이 있었다. 기분이 상한 채 자꾸 쫓아오는 속내가 의심스러워 웬만하면 답을 해 줄 법도 한데 나는 취미 따위는 없다고 차갑게 대답했다.


유명 여류 시인의 일화를 본 적이 있다. 처음 작가로 등단하고 유명 작가들의 모임에 초대되어 갔는데, 남성 작가들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은 술을 먹는 자리였다고 한다. 젊은 신인 작가이다 보니 할 수 없이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러던 중 여류 작가에게 원치 않은 접촉이 발생한다. 요즘으로 따지면 성추행이었던 것이다. 추측건대 1980~90년대였을 것이다. 그 당시 신인이고 여성이라면 방어하기 쉽지 않은 시대였다. 더 황당한 것은 그것을 본 다른 작가들이 웃고만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떠한 접촉이든 본인이 원하지 않은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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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적인 말과 행동을 무조건 상대방이 좋게 받아줄 거라고 사람들은 착각한다.

말에는 내용과 억양이 있다.

내용이 좋더라도 억양에 강도가 조절되지 않으면 오해를 사기도 하고,

억양이 좋더라도 은근히 내용으로 가슴을 후벼 파는 경우가 있다.

행동에는 거리 두기와 다가가기가 있다.

거리 두기는 예의를 갖추기는 하나 친근함이 덜 하고,

다가가기는 함부로 했다가는 엄청난 실례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의 신중하지 못한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기에 우리는 조심하기와 거리두기를 먼저 해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어야 그 다음 스텝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두가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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