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네 탓이요? 내 탓이요!

by 조은주

마르타는 예수님 발아래에서 일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 있는 마리아가 질투가 났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 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마리아는 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직장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 상대방에게 화를 낼 일도 없고 나의 민낯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곳은 서로 경쟁을 해야 하고 '돈'이라는 인간을 가지고 노는 실체에 구속되어 있다. 그렇기에 직장에서만큼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발전과 이익을 시기하게 된다. 나보다 능력이 부족한 것 같고 나보다 일을 덜 하는 것 같은 동료가 있다. 그런데 그 동료가 월급을 더 받거나 승진을 빨리 한다면 나를 탓하기보다 상대방을 질투하게 된다.


다니던 직장에서 운 좋게 여러 가지 혜택을 보고 힘든 일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A라는 직원을 경험한 적이 있다. A의 이기적인 행동에 다른 이들은 그녀를 타깃으로 삼고 대화의 화젯거리로 삼았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함께 떠들곤 하였지만 돌아서면 왠지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A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스타일대로 일을 하고 남들이 말하는 대로 조금의 행운이 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단지 자신의 것을 아주 잘~~ 챙긴 것뿐이었다. 크게 남을 해하려는 의도나 피해를 줄 마음은 없어 보였다. 마르타가 동생 마리아를 질투하는 시선처럼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힌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 착각은 질투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일의 능력도 기회도 운도 나에게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은 내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요 상대방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특이하게 보이듯이 다른 사람의 행동도 나에게 특이하게 보인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나를 손해 보게 하는 상대방의 모든 것이 시기의 대상이 된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보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말하며 가슴을 치는 전례행위가 있다. 성경 말씀만큼 가슴에 와닿는 말과 행동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내 탓이요'라고 되뇌지 않으면 남 탓만 하는 시기로 가득 찬 인간이 되는 느낌이다. 수천 년 전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였다. 하와는 뱀이 자신을 꾀어서 열매를 먹게 하였다고 하고, 아담은 하와가 자신을 꾀어서 열매를 먹게 하였다고 남 탓을 한다. 얼마 전 나라의 한 대통령도 3년 내내 남 탓만 하다가 제대로 나라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을 겪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남 탓을 하는 긴~~ 역사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남 탓이 아닌 내 탓으로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기 때문이다.


미사를 드릴 때 "제 탓이요"를 말하며 가슴을 두드리는데 아플까 봐 사실은 살살 친다. 다음 미사 때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조금 세게 쳐 볼 생각이다. 아픔이 있어야 남 탓도 덜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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