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층간소음
이사를 온 지 10일쯤 되었을 때 딸이 윗집의 층간소음이 심하다고 불평을 했다. 아파트를 살면서 윗집과 아랫집의 불화가 가장 걱정인데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층간소음의 불화가 심하여 칼부림까지 발생하는 뉴스를 접하면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다른 동네에 살면서는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단 한 번을 빼고는.
그 한 번의 이야기이다. 우리 집은 가족이 모두 낮에 집을 비우기에 낮의 층간소음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퇴근 후엔 고된 몸을 쉬어야 해서인지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층간소음은 낮이나 이른 저녁까지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늦은 저녁에 소음은 용서가 안된다. 그때도 늦은 저녁 층간소음의 주범은 크지도 않은 집 거실을 대각선으로 '다다다다 다다다다' 왕복으로 여러 번 뛰어다니는 소리를 내었다. 명백한 뜀박질이었다. 그리고 그 뜀박질을 하는 아이보다 용납하는 어른이 더 용서가 안 되었다.
나는 올라가면 안 되었지만 대놓고 뛰기에 한 번은 말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윗집을 올라갔다.
할머니가 나오셨다. 조심스럽게 건의를 드렸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나이인지 알면 그래도 내 인내심이 발동했을 텐데 몇 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뛰는 소리나 빈도를 보아서는 나이가 어린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제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머니였다. 얼마나 귀한 손자(손녀는 아닌 것이 뜀박질의 수준을 보니 남자아이임이 틀림없다)이겠는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올라갔다. 이번에는 아빠가 나왔다. 건의를 했다. 아이는 또 보지 못했다. 아빠가 젊은것을 보니 아마도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러 오시는 것 같았다. 문득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엄마는 외손녀, 손자를 돌봐주러 연로한 나이에도 매일 우리 집을 오셨다.
윗집을 이해하면서도 우리 가족 모두 층간소음이 너무 심하다고 하자 나는 또 올라갔다. 이번에도 젊은 아빠가 나왔다. 윗집도 대항하기 위해서 남자를 내세운 것 같았다. 윗집은 사과하면서 이사를 간다고 하였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때문에 이사까지 가는 건가.
그러고 얼마 뒤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그 아이를 보았다.
복도식이지만 위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였고 젊은 아빠가 얼핏 기억이 났기에 모른 척하였지만, 윗집이 분명했다. 아빠 품에 안겨있는 아이는 조그마한 남자아이였다. 3~4살 정도였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봄눈 녹듯이 마음이 씻겨내렸다. 그리고 이해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 아이를 생각하며 자아성찰(!)의 의미로 시를 쓰게 되었다. 지역 매거진에 선정되어 소개도 되었다.
<윗집에 사는 제리
오래된 옛집
제리가 천장에서 뛰어다니면 톰을 올려 보내곤 했죠
지금의 윗집 제리는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열심히 뜀박질을 시작합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몸이 벌떡
하지만 제리엄마의 고함소리에
아이구야~ 제리가 또 혼나네 미안함은 살짝
엘리베이터에서 귀여운 제리를 만나는 순간
난 사랑에 빠졌어요
자그마한 제리가 어찌 그리
힘찬 뜀박질 소리를 내는지
신기하기만 했어요
제리야 마음껏 뛰어다니렴
다행히 우리 집엔 톰이 살고 있지 않단다>
우리 딸은 윗집의 층간소음에 화를 내면서도 "아이이면 용서해 준다"라고 했다. 나는 예전의 기억으로 참으라고는 했지만, 무조건 견디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직접 대면, 관리사무소 등 고민하던 끝에 나는 얼마 전 운동을 한다며 계단 오르기를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느낀 점이 집집마다 집 앞에 나와 있는 물건으로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딸에게 대문 밖에 나와 있는 물건을 보면 아이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올라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딸을 올려 보냈다.
딸은 웃으면서 내려왔다. 아이가 있는 집이 확실하다고 했다. 대문 밖에 자전거, 농구공 등 남자아이의 물건이 많다면서.
그렇게 다시 톰과 제리가 될 뻔한 층간소음 소동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