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by 조은주

요양병원으로 언니의 병문안을 갔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가게 되었다.


언니는 젊은 시절 세상에 외면당하고 모든 것을 혼자서 견뎌내고 저항하며 살아오신 분이다. 매 순간마다 사람을 위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아끼고 보살펴 오신 분이시다.


얼마 전까지도 좋아하는 소금빵을 병원 사람들과 나눠먹으며 잘 이겨내고 계신 줄 일았는데...


어느 순간 식사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내려놓으셨다고 한다.


처음엔 언니가 눈에 초점이 없고 말씀도 못하셨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언니에게 말을 붙이고 환자식을 드시게끔 노력하자 차츰 반응을 보이셨다. 간병인 말로는 외로움에 계속 울기만 하셨다고 한다. 가족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간병인도 알기에 안타까움이 컸다고 한다. 삶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겨우 눈만 마주치는 언니가 외로움에 눈물만 흘렸다니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얼마나 슬프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면 모든 걸 내려놓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말을 붙였을 때도 언니는 눈물을 보이며 잠시나마 반응했지만, 바로 희망을 잃은 눈빛으로 변했다.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돌아가시기 전 수개월동안 요양병원 입퇴원을 반복하셨다. 그런 와중에도 가족이 그리워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수시로 하셨다.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고령이시고 언제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집에 모실 수가 없었다. 그때 요양병원을 나와 집에 모시면서 내가 간병했다면 지금의 죄스런 마음은 없었을까. 옆에 누구라도 있어서 외롭지 않으셨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실 수 있었을까 때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언니는 우리가 가려고 하자 화가 난 듯 보였다. 코끝이 빨개지며 눈을 외면했다. 반응을 보이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제발 음식을 거부하지 말고, 뭐라도 드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과연 다음이 있을지 마음이 무거웠다.


하늘나라에 계신 친정아버지도 이곳의 언니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서 24시간 지켜주지 못했지만,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로부터 3주 뒤 언니는 하늘문을 두드리셨다.


언니는 수십 년을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돕고자 사회운동을 하신 분이시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작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한여름 더위로 문을 꼭 닫고 있는 장례식장에 요즘 흔치 않은 나비가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그리고 그 나비는 언니의 추모식 플랭카드에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은 그곳에 온 신문기자가 사진을 찍었고, 우리에게 범상치 않다면서 필요하면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나비는 빈소에 들어와 추모객들 주변을 맴돌았다. 사람이 무서워 구석에 붙어 있을 법도 한데 벽면 중앙에 머물러 있다가 언니와 가장 친했던 활동가가 "언니 이제 편히 가세요"라고 하자, 밤 10시가 되어서야 떠났다고 한다. 나비가 온 다음날이 발인이었다. 모두 언니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남은 이들이 소임을 다하고 언니를 기리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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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우리는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일들을 겪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상황을 믿고 싶다. 우리의 생각이 환상이나 환영일지라도 그러한 마음을 믿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언니를 추모하는 마음들이 하나가 되어 언니의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빛이 되어 줄 것이다.




3주 전 병동을 떠날 때 담당 간호사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가족이 없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지인들이 와서 진정으로 위로해 주시는 것을 보니 진짜 잘 사신 분이 맞네요."라고.


그래요, 언니는 잘 사신 분이세요. 언니로 인해 모두가 행복했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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