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아이들의 노랫소리

by 조은주

직장으로 인해 이사를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전혀 모르는 동네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부담감에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살아보지 못한 높은 층이다. 집을 구하러 다니던 중 가격과 위치가 적당하고 집이 조용하니 안정감이 들었다. 고민도 안 하고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소리였다. 19층이라는 높은 곳이라 소리는 멀리서 들렸다. 짐을 정리하면서 힘이 들고 짜증도 날 법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나의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학교라는 공간이 멀게 느껴지지만, 베란다에서 보이는 학교 운동장은 넓고 시원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작고 까만 점처럼 보였다. 하지만 움직임과 생동감이 있었다.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는 소음이 아닌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백색소음이라고 하면 더 좋을까


그런 와중에 나는 혹시라도 홀로 떨어져 있는 외톨이는 없을까 유심히 보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왕따’라는 사회현상을 곳곳에서 접하면서 상상만 해도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집단생활에서 그런 상황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극한 상황까지 가는 모습을 보면 그래선 안 된다는 자조적인 추임새가 저절로 나오곤 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게임을 하면서 자신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결국은 다른 사람은 피해를 받아도 되고 나와 내 가족은 어떠한 피해도 받으면 안 된다는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이 존중되면서 개인의 이익에 치중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이익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슬프게도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정조차도 순수함을 잃고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던져졌던 부메랑이 다시 내게로 돌아오듯이 내가 던졌던 이기적인 말과 행동은 언젠가는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을 알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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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신나게 움직이는 모습과 소리를 들으면서 괜한 생각까지 하는 것은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운 부모로서 사회의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 동료가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만난 아이의 친구가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 친구의 부모를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며 나에게 푸념을 했다. 그때 나는 "자기가 먼저 인사를 하지 그랬어!"라고 했다. 그러자 그 동료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러게요. 제가 먼저 할 걸 그랬나 봐요"


어른들은 아이들의 예의를 탓할 때가 있다. 그 예의를 어른들이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지를 망각하고 아이들에게 '버릇이 없다'는 표현을 쓴다. 아이들은 궁금할 것이다. 자신이 언제 그런 예의라는 것을 보고 배웠는지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진짜 의문스러울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어른들은 도리어 화를 내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소리가 세상이 역동하는 힘으로 여겨져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아직은 낯설지만,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해 주게 하는 이 도시에 정들어 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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