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싸움

사랑스런 흰둥이

by 조은주

출근길 산책로가 있어 운동삼아 걷고 있었다. 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중년의 여성이 반려견의 목줄을 잡고 격양된 목소리로 "그 입 다물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아주 싸가지가 없네."라며 되받아쳤다.

그 옆으로는 목줄이 없는 희고 몸집이 큰 개(일명 흰둥이)가 천방지축 산책로를 누비고 있었다.


나는 금세 상황이 파악됐다. 흰둥이가 목줄을 안 했다는 이유로 싸움이 난 것이다. 흰둥이의 주인은 나도 알고 있는 할머니였다. 마당이 있는 흰둥이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신다. 그 집에는 어미 흰둥이가 있다. 새끼를 배어 5마리를 낳았다고 했다. 그중 4마리는 입양을 보내고 새끼를 다 보내면 어미가 슬퍼한다고 한 마리는 남겨 놓은 것이다. 작년 아기 흰둥이들이 어릴 때 두 마리가 집 앞에 나와 놀던 모습을 보고 나는 홀딱 반했었다. 하얗고 조그만 녀석들이 자유분방하게 뛰노는 모습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MBTI가 극 I형인 나는 용기를 내어 강아지 주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두 마리중 한 마리를 데려갈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나는 한 마리를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진돗개만큼 크는 개를 키울 수가 없었고 가족이 모두 나간 집에 혼자 둘 수도 없었다. 며칠 뒤 두 마리중 한 마리는 보이질 않았다. 누군가 데려갔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랬던 남은 강아지가 훌쩍 커서 목줄을 안 한 채 산책로를 헤집고 다니는 것이었다.

da82deab1d2a04c0128b67ecf62097c6.jpg

목줄을 한 다른 반려견의 주인들은 싫을 수밖에 없다. 할머니가 흰둥이에게 개매너를 가르쳤을 리도 없고 흰둥이 스스로 터득했을 리도 만무하다. 몸집이 큰 흰둥이가 민폐이긴 했다. 의도치 않게 오프리쉬(off-leash,반려동물이 목줄이나 가슴줄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흰둥이를 좋아하는 나의 눈에는 주인과 같은 사랑스러운 마음이었다. 할머니의 집에 들러 흰둥이에게 내가 직접 목줄을 채워 산책로를 거니는 상상을 해 본다. 흰둥이를 키우는 할머니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나도 흰둥이와 같이 거닐 수 있다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오늘 사달이 났으므로 아마 다음에는 할머니가 목줄을 채울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할머니는 목줄을 잡고 다니지 못한다. 할머니는 젊고 큰 개의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키우던 반려견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있다. 그분은 더 이상 반려견을 키울 자신이 없어 자신의 베란다에 쌀을 뿌려 먹이던 참새들에게 위로받으며 사신다. 살림이 풍족하지 않지만 찾아오는 참새들이 귀여워 계속 쌀을 뿌려놓았더니 참새들이 친구들을 데려오더란다. 나중에는 쌀을 뿌려놓는 시간을 알고 미리 우르르 와서 주변에서 앉아 있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고 하신다. 어쩔 때는 살림이 어려워 남들이 주는 묵은쌀을 뿌려놓으면 귀신같이 알고 먹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바로 다른 쌀로 바꾸어 참새들을 먹인다고 하신다. 할머니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참새들은 매일 할머니를 찾아와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반려동물로 인해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사랑을 배운다. 그 위로와 사랑을 받기만 하고 나누지 못한다면 각박한 세상이 될 것이다. 반려동물로 인해 받은 사랑을 다른 이웃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주면 어떨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벽의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