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살까지 라니
20대 때 여의도에 무역회사를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빌딩에 영업을 하러 오는 대한생명 보험 아줌마가 있었다. 영업력이 없어서인지 매일 찾아와 인사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탕을 주고 가곤 했다. 당시에는 문전박대는 안했지만 영업을 하러 찾아오면 거의 홀대를 하였다. 하지만 그분은 홀대를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매일 오는 것을 택한 것이다. 말을 잘하지 못해서인지 보험을 들라고 권유도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보험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여성분들이고 호칭이 '보험아줌마'로 통했다)
그러다 동료와 나는 매일 오는 그분의 성실함에 호기심이 생겨 시간을 내주며 앉으라고 권했다. 그제야 보험아줌마는 보험을 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꾸준함이 우리를 굴복시킨 것이다.
그때부터 보험아줌마는 열심히 보험을 설명하였다. 우리가 볼 때 베테랑은 아니었다. 본인도 보험영업이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결국 우리는 각각 생명보험을 가입했다. 그 당시에는 여러 종류의 보험이 없었다. 생명보험이 주였던 것 같다.
보험을 들면서 만기(죽을 나이)는 언제로 할지를 정해야 했다. 그때 보험아줌마는 55세를 권하였다. 나는 무슨 55세까지 사냐며 50세까지만 살아도 많이 산 것이라며 50세로 하라고 하였다.(그 시대에 20대 나이로는 체감상 그 정도만 살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보험아줌마가 권하기에 마지못해 55세까지로 만기를 정했다. 물론 그 보험은 중간에 해지하여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지를 하지 않았다 하여도 나는 현재 나이가 55세이다. 그 당시로 따지면 보험혜택을 못 받는 만기(죽어야 할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직 짱짱하게 살아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 중 그때로부터 13년이 지난 2009년도에 든 보험은 100세가 만기로 되어 있다. 내가 20대에 들었던 보험과 10년이 지난 30대에 든 보험과는 만기가 거의 50년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과학적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평균 수명이 52세 정도였고, 1970년대에는 10년 만에 62세가 되었다. 의료, 영양, 위생의 개선으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수명은 더 길어진다고 한다.
나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80세가 넘는 연세에 작고하셨다. 두 분 다 당시에는 장수를 하신 것이다. 체감상 지금의 100세를 넘기신 것과 같다. 그분들의 자녀인 나의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도 90세를 넘게 사셨고 현재도 친정어머니는 생존해 계시다. 이분들에게도 90세가 넘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인데, 벌써 이 시대는 90세 넘는 연세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지금 80대인 나의 이모와 이모부는 건강상 본인들 스스로 100세는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현재 55세인 나는 100세 넘게까지 너끈히 살아낼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한 강연에서 김경일 교수(아주대학교 심리학과)는 1970년생인(나와 동갑) 자신의 나이대가 130살까지 산다는 과학적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20대에 내가 느끼고 있는 종신의 연령이 50세였는데, 30년을 더해 80세까지 살 수 있었던 것 같이, 내가 느끼는 지금의 종신은 100세인데 30년을 더하면 130세 생존은 거짓말이 아니다. 앞으로 75년을 더 살아야 한다. 지금껏 산 나이보다 더 살아야 하는 것이다.
2000년생은 140살까지 살게 될 것이며 지금 학계는 150살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듣는 순간 수백 명의 강연에 모인 사람들이 숨소리 하나 안 내며 숙연해지는 순간을 나는 정확히 느꼈다.
너무 엄청난 사실이라 믿기지가 않으면서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많다는 둥 갈 때가 되었다는 둥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둥 현실과 맞지 않는 얘기는 이제는 저기 먼 우주의 얘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자세는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항노화가 아닌 역노화가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는 늙지 않는 것이 아닌 도리어 젊어지면서 살 수 있다는 얘기이다.
강연을 듣고 나오면서 같이 갔던 나의 남편은 나에게 "당신 국민연금(10년이 안 되어 일시불로 찾으려고 하였음) 한 번에 추납 하여 연금을 타는 쪽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때?" 라며 조용히 권유하였다.
나 또한 수긍하였다. 산 시간보다 살 시간이 더 많다 하니 연금을 오래도록 받아야 할 것 같다.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