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사건

장인 설거지

by 조은주

대학선배가 신혼 때 남편과의 기싸움을 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선배는 페미니스트이다. 선배는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에서는 강하게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생활에서는 실천을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했었다. 선배는 결혼을 하면서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남편과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남편이 설거지는 무조건 해 주기로 한 것이다. 30년 전이니 약속을 해 준 것만 해도 대단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처음에는 설거지를 잘하다가 점점 설거지를 안 했다고 한다. 선배는 결혼초부터 서로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가 깨진다는 생각에 강수를 두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여성들은 집안일이 쌓여 있으면 남편이 도와주지 않아도 그냥 본인이 다 해 버린다. 하지만 선배는 일주일을 설거지를 그냥 두었다고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둘 다 기싸움을 한 것이다. 지금은 잘 살고 있기에 그 당시 설거지 사건은 잘 해결되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여성을 탓한다. 지금까지도 집안살림은 여성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도 사회활동을 하고 육아까지 맡아야 한다면 집안살림을 하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닌 함께 해야 하는 가정 안에서의 서로의 몫이다.



최재천교수님(생물학자, 2005년 호주제 폐지의 공헌자)의 책을 읽다가 교수님도 결혼하면서 설거지를 해 주기로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꾸준히 약속을 잘 지키며 의무적으로 설거지를 하였다고 한다. 나의 일이 아닌 아내를 도와주는 일로 생각하다 보니 그릇도 깨뜨리고 말끔하게 하질 못했다고 한다. 성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햇볕이 어깨를 내리쬐던 날 느긋하게 설거지를 하던 중에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이것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다음부터는 설거지를 함께하는 일로 받아들여 자신의 일처럼 정성껏 깔끔하고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설거지 장인이라고 하신다.

설거지를 남편에게 하게 하는 것은 여권신장을 위해서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가사의 분담도 아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내가 좀 더 일하면 어떠랴. 단지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중요하다. 함께 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그 과정에서 같이 고생하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우리는 힘듦 따위는 이겨낼 수 있다.


30~40년 전의 설거지로 인한 갈등이 기싸움으로 잘 해결되고, 혹은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는 날에 스스로 깨닫게 되듯이 우리는 시대의 어떠한 힘든 갈등도 해결할 수 있는 각자 나름의 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발휘되는 날 우리는 최재천 교수님처럼 깨달아 함께 하는 '설거지 장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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