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어
우연히 '판교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판교사투리'라고도 한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인데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말에 영어 단어를 잔뜩 넣어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판교에 IT개발자들이 한영혼용체 말투로 쓴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유행되었다고 한다. 심할 때는 한국어에 조사와 관사만 빼고 다 영어를 넣어서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류들이 대화를 할 때 전문용어와 영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행이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판교어는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사회를 살아가는 생존어이거나, 잘못 오해하면 지식층의 자만으로 비칠 수 있는 신종 언어이다.
성인이 된 나의 아이가 초등생쯤 언젠가(2008년)부터 '레시피'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학부모 모임에 가면 엄마들이 먹던 음식의 레시피가 궁금하다고 하면서 '레시피'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왜 저런 말을 쓰는지 궁금했다.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인지 양념이 무엇인지라고 말하면 될 것을 언제부터 '레시피'라고 했던 것인가 의아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쓰니 사용하지 않으면 나만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2010년 '파스타'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셰프'라는 단어를 쓰면서 유행이 된 적이 있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솁"이라고 부르면서 강하게 인상을 남겼었다. 그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요리하는 사람을 요리사나 주방장이 아닌 셰프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셰프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이다.
'폭군의 셰프'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나는 뜻밖에 발견을 하였다. 그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한글을 다른 언어로 변형시켜서 사용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지금 시대의 언어가 조선시대에 가서는 원활하게 소통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말로 가능한데 굳이 다른 언어로 대체해서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드라마에서 우연찮게 드러났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영어를 한국어로 모아봤다.
영어 -> 드라마에서의 대사 -> 한글 순서이다.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는 재미로 넣어 보았다.
셰프-세포-요리사 / 프랜치-불난집-프랑스식 / 알레르기-못 드시는 것-과민반응 /
스테이크-스테쿠-고기구이 / 수비드-저온조리 / MSG-합성조미료 / 아이템-품목 / 키친-부엌
테이블서비스-자리에서 안내 / 파스타-빠스터-서양국수 / 페스토-빻은 양념
치킨스프-닭고기국물 / 슈니첼-고기튀김 / 비프-소고기 / 킥-특징 / 아이리수-붓꽃 이외에도
타르타르소스, 리듬, 마카롱, 버터향, 세트장 등등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많은 외래어가 나왔다.
현대에서는 이상하지 않는 단어들이 조선시대로 가니 하나도 못 알아듣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 외에도 주인공인 셰프가 프랑스 요리를 설명하는 기법이나 요리이름은 나도 모르는 단어들이었다.
드라마에서 하나하나 찾아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많은 외래어를 일상에서 쓰고 있었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을 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습관적인 외래어가 많다는 사실이다. 어떨 때는 외래어를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 한글 단어가 생각이 바로 안 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나 또한 초급 수준의 판교어를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국정부에서 만든 어학당인 세종학당(한국어 보급을 위한 기관)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2024년 누적 수강생이 127만 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세계인의 관심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K-Pop문화와 한글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자신의 국가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개인의 성공이나 경제적 부와는 다른, 뼛속 깊숙한 곳에서 뿜어 나오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다. 그 자신감이 있기에 비록 우리가 일상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우리의 얼과 애국심은 변함없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