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관계의 거리

by 조은주

몇 개월 전 딸과 다투었다. 다투었다는 말보다 딸의 행동에 내가 실망하여 화를 낸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화가 나서 말을 안 하면 딸이 먼저 와서 사과를 하곤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딸은 나에게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서로 말을 안 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서로 기분이 상할 때는 그때 상황만 잘 풀면 되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화해를 했지만, 무언가 찜찜했다. 딸의 표정이 밝지가 않았다. 나는 내가 욕심을 부렸다고 먼저 사과를 했다. 그제야 딸은 속마음을 얘기하였다.


"엄마는 아직 나를 중학생으로 취급해! 난 이제 성인이라고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판단력이 있는 어른인 나를 따라야 한다고 여겼다.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나고, 또 화를 냈다. 아이들이 거역하면 버릇이 없고 잘못 키웠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아이들을 혼냈다. 그러한 권위주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나 자신에게 나타났다.

딸에 이어 아들까지도 연달아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잘못한 일에 엄마가 심하게 말을 해서 상처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에게도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일들이 있고 나서 나는 아이들이 나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아이들에게서 독립해야 함을 깨달았다. 평상시에는 버릇처럼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여야 하고 부모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이 아닌 내가 독립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집을 떠나면 엄마들은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다. 그것은 결국 먼저 아이들을 놓아주어야 함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는 엄마들에게 나타나는 정신적 불안감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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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한 지금 나는 너~~~무 자유롭다. 진작에 할 걸 그랬나 싶다.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의 고민도 고생도 옆에서 응원과 격려를 할 뿐, 내가 속상해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준 '고마운 선물'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누군가는 나의 집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라고 했던가.


'고마운 선물'이라면 소중히 다뤄야 하고, '귀한 손님'이라면 극진히 대접하여 돌려보내야 한다.


자유로움이 온 뒤로 후유증이 있기는 하다.

그 후유증은 약간의 거리감이다. 아이들을 독립체로 보지 않고' 내 새끼들'로 감싸고 돌 때는 말과 행동을 함부로 했던 것 같다. 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편함이었다.


마음의 독립을 한 뒤로 마음은 편하지만 행동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맞았다.

고마운 선물을 조심스럽게 열어보고 소중하게 사용하듯이,

귀한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고 정중한 모습을 보이듯이

어쩌면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 수 있다.


그 거리두기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관계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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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와의 성숙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언제든 필요할 때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안전지대'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소망은 나의 아이들에게 변함없는 '안전지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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