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가 바라보게 되다
화실에서는 완성이었는데
집에 와서 다시 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한 과거에서 온 연필은
20년 전으로 돌아가 미끄럼틀 탄 듯
뭉툭함 속 그가 걸어온 길을 가두고 있었다
집을 나설때는 몰랐는데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렸던 날짐승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연필과 눈이 다툰다
지금쯤이면 이정도면 완성이겠지
한걸음 두걸음 뒷걸음질쳤는데
잘 모르겠더라
연필심이 내맘에 턱 박힐때
그때쯤이라면 다시 올까
그래도 모르겠더라
끝이 없어 아름답다고
내 손목에 채워진 팔찌가 언제 이렇게 헐렁해졌지
마무리가 되지 않아 답답하다
툭 놓는다
소묘를 그리다가
소묘를 바라본다
창 밖에는 아직도 3월의 눈이 내린다
연필을 잠시놓고 나는 한달음에 3월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