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 절반이 대표선수
도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체육대회가 열린다고 하셨다. 우리반 여자아이 10명 중에서 반 정도가 대표선수가 되었다. 나는 달리기가 빨랐기 때문에 100m달리기 선수로 뽑혔다. 또한 투포환 던지기도 하라고 하셨다.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지만 담임선생님이 정하신 대로 선수가 되었다. 민정이는 높이뛰기 선수, 연지는 나랑같이 100m 달리기랑 넓이 뛰기 선수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두 개이상의 종목은 맡아야했다.
남자아이들도 몇 명씩 대표선수로 뽑혔다. 우리를 가르치는 건 담임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모든 종목을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선생님께서 달리기는 출발할 때의 규칙과 선을 밟지 말아야함을 알려주셨다. 투포환은 공을 잡고 팔을 뒤로 한 다음 손목이 아니라 팔 전체로 밀어내듯이 던지라고 하셨다. 그게 끝이었지만 운동장에 모여서 연습을 하곤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넓이뛰기를 알려주셨다. 멀리서부터 전속력으로 뛰어와서 점프를 하셨을 때 얼굴이 새빨개지시고 안경이 비뚤어지기는 했지만 2m40cm의 거리를 뛰셨다. 아이들은 모두 “우와”하며 박수를 쳤다. 선생님은 부끄러운 듯 웃으셨다. 한 번 더 도전하셨을 때는 더 멀리 뛰었지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우리는 모두 웃음이 터졌다. 작은 운동장 여기저기에서 연습이 시작되었다.
나는 계속 달릴 수는 없기에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곤 했다. 우리반 남자애 민철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더 나갔다. 100m선수가 되었는데 운동장 저쪽에서 달려오는데 얼굴부터 다리까지 온몸에 살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속도는 엄청 빨라서 뭔가 큰 동물이 달려오는 듯 느껴졌다.
조용한 운동장에 하얀 나비가 운동장을 날아다녔다. 나는 나비의 뒤를 뒤쫓으며 나비를 따라다녔다. 장난으로 두 발로 점프하며 나비를 잡으려고 했는데 정말로 나비의 위로 점프를 했다. 얼른 발을 치웠는데 나비가 아파서 쓰러져있었다. 아니 나비가 왜 이렇게 느린지... 귀여움을 표현하려던 나는 너무 머쓱해져서 누가 봤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 미안해서 나비를 한쪽 구석으로 옮겨주었다.
대회날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아무 옷이나 입고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엄마가 달리기용 운동화를 사주셨다. 운동화는 가벼웠고 바닥에는 넘어지지 않게 뾰족한 것들이 있었다. 예선을 거쳐서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나는 두 번의 1등을 통해 1등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전체 1등을 뽑는건 무리였는지 어느정도 달린 상태에서 1등을 나눠주었다.
연지는 100m를 달리다가 선을 밟아서 실격했다고 말했다. 민정이는 애초에 높이뛰기와는 거리가 멀어서 금방 떨어졌다고 했다. 나의 투포환 역시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바로 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주변을 구경할때쯤 “와”하며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 곳에는 또래 아이들보다는 조금 키가 큰 잘생긴 남자아이가 서있었다. 아이들은 그 아이의 멀리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살짝 코 밑에 자란 콧수염이 그 남자아이는 또래보다 형님같은 우쭐한 모습을 보였다. 멀리서부터 뛰어오더니 하늘을 날았다. 그 남자아이는 하늘에서 발을 휘젓고 있었다. 꼭 하늘을 달리는 모습이었다. 보기보다 기록은 별로였지만 우리에게는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끝나고 선생님께서 자장면을 사주셨다. “젓가락질이 왜 그래?” 우리반 승우가 놀렸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젓가락질을 봤는데 알고보니 그동안 거꾸로 잡고 젓가락질을 했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야기 하고 젓가락질을 다시 배웠다. 배울게 많네...
‘6학년에 젓가락질을 새로 배우다니..’
- 체육대회를 나간다고 했다. 또 그 시간이 왔군. 유일한 총각교사인 나는 체육대회를 하면 코치, 감독이 되었다. 물론 내가 학교 다닐 때 체육을 뛰어나게 잘한 건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시키니 해야지..
벌써 3년째라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체력장을 통해 아이들의 기본 실력을 파악하고 몇 명을 대표로 뽑았다. 서울에서는 “우리 애는 공부해야 하니까 체육대회는 빼주세요”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이 곳은 그런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체육대회의 모든 종목에 코치가 되어야했다. 친하지 않던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를 나누니
“니가 웬일이냐? 시골가서 죽었나 살았나 싶었는데...”“선배 100m 달리기는 어떻게 하는 거죠?” “갑자기 뭔 소리야?”
“아 제가 애들을 가르쳐야해서”
“너가? 농구라도 같이 하자고 그렇게 졸라도 도서관만 가던 놈이..”하며 선배는 껄껄 웃었다.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투포환은요?”하고 물으니 “아 몇 개를 하는 거야? 니가 다 가르쳐?”하고 말했다. 선배와 한참 통화를 한 뒤 선배는 “서울와서 밥 한 번 사라”하고 말했다. “고마워요 선배..” 오랜만에 말을 많이 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투포환이 뭔지, 높이뛰기는 뭔지 처음 들어보는 눈빛이었지만 곧잘 따라했다. 이 곳에서는 나는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했다. 또 신기하게 그런 능력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