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수컷이 있고 암컷이 있대
집앞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했다. 은행이 달렸다.
“경숙아 은행나무는 수컷이 있고 암컷이 있대. 수컷과 암컷이 마주봐야 열매가 열린대. 재밌지?” 엄마가 말하며 웃었다.
은행은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은행을 밟고 나면 신발에 들러붙어서 나뭇잎으로 떼어주곤 했다. 엄마는 은행을 처리할 자신이 없다며 아랫집 아저씨에게 은행을 따가시라고 했다. 아저씨는 은행나무 주변에 비닐을 깔고 은행나무에 올라가서 은행을 터셨다.
“아저씨가 은행을 터시네?”하고 말하며 나랑 엄마는 마주보며 웃었다. 얼마후 엄마가 은행을 보여주셨다. “아랫집 아저씨가 은행을 주셨어. 이거 우유팩에 넣어서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으면 맛있대” 엄마가 전자렌지에 넣어서 돌려주신 은행은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쫀득쫀득한 맛이었다. 냄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 다음에는 우리가 딸까?”하고 말하니 엄마는 “자신없어”하고 말하며 웃으셨다.
화장실 가는 길에는 밤나무가 있었다. 반은 아랫집이고 반은 우리집에 있어서 양쪽으로 떨어졌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엄마는 한웅큼씩 주워오셨다. "그게 아랫집 할머니네 밤나무라면서 줍지 말라고 싸움이 났었대. 근데 땅 크기를 쟀는데 알고보니 우리쪽 땅이라는 거야. 그래서 이제는 주워도 뭐라고 안하신대."하며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기 집 마당에 떨어진건 자기들이 가지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봤나보다.
나도 화장실 가는 길에 밤송이를 발견하고 신발로 열어보았다. 잘 익은 밤은 자기가 알아서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어떤 밤은 직접 열어서 안에서 꺼내줘야했다. 가끔 슬리퍼를 신고오면 발에 가시가 찔려서 가을에는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엄마는 밤을 삶아서 먹으라며 식탁위에 올려놓으셨다. 아빠는 밤을 반으로 자른 뒤 커피 숟가락으로 속을 파드셨다. 나는 입으로 반으로 자른 뒤 씹어 먹다가 껍질을 뱉었다. 그러면 가끔씩 껍질이 이빨에 끼기도 했다. 귀찮아서 잘 안 먹었지만 언니는 그마저도 귀찮다며 먹지 않았다. 엄마가 밤을 칼로 껍질을 깎아주시면 언니는 그건 잘 집어서 먹었다.
한 번은 캄캄한 밤에 밤을 집어서 먹고 뱉었다. 다음날 썩은 밤이 있다는걸 본 뒤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애벌레까지 씹어먹었던건 아닐까. 그 후로는 밤의 상태를 확인한 뒤 숟가락으로 퍼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