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뒤 큰 딸은 완결이 되야 읽는다고 하고 신랑은 몇개 보더니 멈췄다. 웹툰에 익숙한 가족에게 가족이니까 읽어달라는 강요는 하지 않았다. 직장동료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꾸준히 글을 읽어주는건 단 한 명의 직장동료였다. 내가 하는 말이 너무 재미있다며 코미디언이 되지 그랬냐고 하기도 하고 한 번은 장도연같다는 칭찬도 해주었다. 글이 나오고 나면 자기의 경험과 비교하며 피드백을 해주기도 했다.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한다는 이야기도 이어갔다.
직장에서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면서 그 선생님은 '나의 자존감 지키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칭찬을 달고 사는 사람을 가까이 둔 것은 큰 축복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칭찬들을 일이 없고 나 또한 칭찬을 잘하는 성격이 못되었다. 우리 신랑은 자기에게 칭찬을 해달라고 이야기를 가끔 하곤했다. 너무 당연한듯 시키는 것들이 내심 서운했던 모양이다. 큰 마음을 먹고 칭찬하면 비아냥대는 것처럼 보이는지 오히려 당황스러워했다.
우리 집에 유일한 F인 그림을 잘 그리는 작은 딸에게 “이렇게 이렇게 그려줘”하고 부탁을 하면 쓱쓱 그림을 그려줬다 하지만 수정이나 다른 요청은 들어주지 않는다 어떤 때는 “독자님들이 기다려 빨리 그려줘”하고 말하면 “몇 명이나 되는데?”하며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면 “엄마가 나중에 잘되면 사인회 할 때 너 데리고 갈게. 엄마 책 팔리면 돈도 줄게”하며 꼬시기도 한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도 글을 쓰겠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를 어릴때부터 좋아했지만 엄마는 돈이 없어서 학원을 보내주지 않았다 아랫동네에 잘 그리는 언니가 있었는데 항상 미술대회에서 상을 타오곤 했다. 그 집에 물어보고 오신 뒤로는 “미안해”라고 말씀하셨다. 어릴때 그림을 잘 그려서 유치원때는 서울에서 상도 타왔고 초등학교때는 그림 그리는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갔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운 아이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3년동안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강남에 있는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직장인을 위한 저렴한 것들이 있지만 잘 연결이 되지 않아 나의 돈으로 3개월을 등록했다.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라면 나에게는 그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전이어서 취미로 미술을 배우는 사람들 몇 명이 있었고 학원은 조용했다. 넬의 노래를 틀어놓으셨는데 넬의 노래를 들을 때면 지금도 그 때의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살짝 바람이 불던 날, 넬의 목소리만 들리던 시간이 모두 멈춘 것 같은 고요함. 그리고 채워져가는 나의 스케치북. 미술의 기초부터 배우고 난 뒤 원장님은 유화로 넘어가자고 하셨지만 오래 못 배울걸 알기에 수채화를 골랐다. 비싼 재료까지 나에게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느낀 것은 항상 책상에 엎드려 낙서를 하던 나에게, 좁은 시야로 보지 말고 멀리서 전체 그림을 봐야하는 것이었다. 나의 느낌에 열심히 그리고 나서보면 원장님의 지우개에 몇 시간의 그림이 지워지기도 했다. 원장님의 말씀에 따라 한 번씩은 일어나서 멀리 떨어져서 전체 그림을 보게 되었다. 좁은 시야안에 갇혀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작품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원장님의 터치가 더해졌다. 그러면 초등그림이던 그림이 원장님의 붓 놀림으로, 연필의 세세한 차이로 전문가의 그림으로 바뀌었다. 집에 그림을 가지고 가면 아빠는 액자에 끼워서 집 여기저기에 붙여놓으셨다. 20살이 넘어서 그려온 그림을 액자에 거는 아빠의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웠다고 해서 미술로 전공까지 했을 거란 자신감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것을 바라보지 못했다.
아빠는 교회에서 '아버지학교'를 하시며 나에게 편지를 써주셨다. 아마 처음으로 받은 편지이자 마지막 편지가 아닐까 싶다. 그 편지에 "미술 못 시켜줘서 미안해"하는 말이 쓰여져 있었다. 한 번도 '공부해라, 학교는 어디가라'하는 잔소리를 해본 적이 없던 아빠였다. 그 편지 한구절에 나도 모르던 감정이 내재되어 있었는지 그 글만 보면 눈물이 나왔고, 엄마아빠가 알아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운한 감정은 싹트지 않았다.
'틈만나면'을 너무 좋아해서 즐겨보는데 솔이의 김혜윤이 그런 말을 했다. "번아웃이 오면 어떻게 하시냐"고 했을때 유연석은 취미생활로 집중하며 이겨낸다고 말했다. 나도 항상 드라마나 TV시청, 게임을 하며 지냈는데 새로운 취미활동으로 인해 새로운 시각이 열리게 되었다.
가끔 도서관을 가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기란 너무 어렵다. 하지만 무료로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는건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서 가능한 듯하다.
가끔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면서 두 가지를 할 수 모두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