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다니면 되는데 이사라니...
6학년. 이제 1년만 다니면 되는데 이사라니... 전학이라니...
머리가 아프다
예측되지 않은 삶은 나에겐 스트레스다
자기 전에 내일 하루 일정을 시간별로 머릿속에서 계산을 한 뒤 잠을 자는데 전혀 정보 없는 곳으로 이사라니. 친구를 사귀는 것도 나에겐 큰 일이다
“갑자기 왜 이사하는 거야? “하고 묻자 엄마는
“공기 좋은 시골에 살고 싶어 엄마는 작은 텃밭 가지는 게 꿈이잖아”하고 말한다
“어디로 가는데?”
“경기도래. 그리 멀지 않을 거야. 서울이랑 가깝겠지”
이사 가기 전 날 밤 엄마는 우리 보고 필요 없는 짐은 버리고 인형도 두세 개만 남기라고 이야기하셨다.
“언니는 중학생이잖아. 인형은 다 버리고 가자”라고 하는 걸 그나마 2~3개로 합의를 보았다.
“아빠가 보증을 섰대 잘못됐나 봐 모른척해”
문제집을 정리하며 언니가 말한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짐을 쌌다
“어디 시골로 갈 거 같아. 버스나 자주 다니려나 모르겠다 “
“언니는 걱정 안 돼? 중학교 가야 하는데?”
“시골전형으로 해서 내신은 잘 받겠지 “
언니는 특유의 낮은 톤으로 이야기한다
“너 이거 쓸 거야?”
언니가 쳐다보지 않고 손으로 노트를 한 권 내밀었다. 언니의 어릴 때 글씨체가 적혀있다
세라, 세미, 하은…
우리 딴에는 세련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이름이 적혀있다
언니랑 인형들을 잔뜩 꺼내놓고 인형들의 이름을 정해서 출석을 부르며 놀았는데..
거기에는 내가 그린 그림도 보였다
잘록한 허리에 긴 머리. 목걸이와 귀걸이는 왜 이렇게 크게 그렸을까?
“버리자”
나는 헌종이 통으로 공책을 던졌다
이삿짐차는 새벽 일찍 도착했다
엄마는 이삿짐차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미리 짐을 싸서 박스 안에 넣어두었다
“요새는 다 싸준다던데” 아빠가 말하니
“내 살림은 내가 하는 게 편해요”하고 엄마가 말한다
매직으로 내용물을 써놓고 테이프까지 붙여놓아서 쌓아두셨다. 그래선지 짐을 금방 차에 실었다
“여기는 동전하나 안 나오네요?”
이삿짐 아저씨가 이야기한다
엄마가 워낙 알뜰하셔서 그랬을까?
이삿짐 짐 싸는 동안 언니랑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언니랑 같이 놀이터에 오는 게 얼마만인지…
언니는 사춘기가 시작되고는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엄마 옆에서 재잘대던 언니가 시큰둥하게 변한 건 엄마도 서운한 모양이다
”이제 가자 “
엄마의 목소리에 집으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여기만 살았었는데..
빈방을 보니 집이 더 좁아 보였다
언니랑 문에 붙였던 스티커, 언니랑 나랑 키를 재던 나무판도 보였다
다시 서울로 올 수 있을까?
서울과 가깝다더니 이사 가는 집은 한 시간 반이 넘게 달리고 있다
언니는 아까부터 눈을 감고 있다. 자는 것 같지는 않은데..
창밖을 보다가 심심해진 내가 물었다
“엄마는 가봤어?”
“아니 아빠가 서울이랑 가깝대 엄마가 텃밭 꾸미고 싶어 했잖아 작은 앞마당도 있대 우리 상추랑 방울토마토랑 심자”
우리나라에 이렇게 산이 많았었나? 온통 산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논밭은 온통 비어있고 흙만 보인다
“거의 다 왔다”
한마디도 안 하던 아빠의 입에서 두 시간 만에 나온 말이다
반대편차를 만난다면 끝없이 후진해야 할 것 같은 좁은 길이다
꼬부랑 비포장 도로를 지나며 언니랑 나는 몇 번씩 엉덩이가 들썩여졌다
조금만 운전을 못하면 논이나 밭으로 떨어지겠지
아빠말은 틀리지 않았다
앞마당은 있었다
앞마당인지 그냥 집 앞에 정리가 안 된 흙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내 방이 있었으면 싶었는데 방은 3개지만 한방은 너무 좁아서 창고로 쓰기로 했다
혼자서 방을 쓰는 게 나의 작은 꿈이었다
언니는 (공부를 잘하는 언니는) 시험기간이면 밤늦도록 공부를 했다 그리고 새벽이면 또 일어나서 공부를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시험기간만 되면 9시에 잠이 들었다 엄마는 매우 답답해했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언니는 그런 나를 새벽마다 공부하라며 깨웠고 나는 악착같이 더 잤다.
언니는 시험기간이면 책을 언니 주변에 펼쳐놓았다
“수학하기 싫으면 국어 풀고 국어 싫으면 사회 풀고. 내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 해”
나는 시험기간이면 일단 책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책상을 닦고 쓸데없는 종이를 버린다
시험기간이면 갑자기 책상 위를 정리하는 나와 언니는 너무 안 맞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언니랑 방을 쓰게 됐다
“난 어차피 혼자는 무서워서 못 자”
언니는 이불을 턱끝까지 당기고 옆으로 누웠다.
유난히 캄캄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