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하시며 입원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보통 전화를 하실 땐 시간이 되는지 묻는 게 먼저였는데 그날은 아니었다.무조건적이고도 단호한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 생일이라고 설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는 엄살이 없는 분이시다.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프시면 다짜고짜 입원부터하자고 하시는 걸까?
더구나 그날은 나와 아버지의 생일날이었다.
음력날짜 생일이 같은 우리 부녀는 내 나이 마흔다섯이 되도록 생일날은 항상 함께였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아버지덕에 생일상도다른 형제들보다 푸짐하게 받았다. 결혼 전에는 가족들과 함께 했고, 결혼 후에는저녁까지는 아니더라도 점심식사와 커피정도는 우리 부녀에게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정해진터였다. 하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식사는커녕 커피도 허락되지 않았다.
서둘러 아빠에게 갔던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버티며 마루 끝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 한 번씩 입원하실 때마다 챙겨 가시는 가방이 아버지를 간신히 받쳐주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버지를 부축해전에 없이깡마른 몸을 조수석 의자에 올려놓다시피 하였다.
생신축하한다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아빠도 내 생일을 축하해 주지 않으셨다.
매년 생일마다 서로 더 소리를 높여가며 아빠 "축하드려요"하면,"너도 축하한다."를 반복하며 웃던 우리였다.하지만 그날아버지는 다른 세상을 보고 계신 듯 눈빛이 흐렸다.
하루 이틀 사이에 이렇게까지 안 좋아질 수도 있단 말인가? 씩씩하던 분이 혼자 자동차 의자에 앉는 것도 힘들어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나는 그저 운전에만 집중했다. 의자에 기대앉아 창밖만 바라보는 아버지도 어떤 생각을하고 계시는지 같은 자세를 고쳐 앉지 않으셨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2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병원에 모시고 가면서, 그렇게 불안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한 마음은 현실이 되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도 않은 짧은 시간에 간암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어지러움 증상이 생기자 집에서 넘어지면 자식들 고생시킨다는 생각에 무조건 입원을 결심하셨던 아버지는 당신 생일날에 날벼락을 맞으셨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렇게 순식간에 말기암 판정을 받으시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담담하실 수 있었을까?
내 기분이 어떠하든 더 힘든 사람은 아버지니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곧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해보겠지만 분명 오진일 거라고, 여기는 작은 병원이니 이쪽에서 한 말은 잊어버리시고 일단 잘 자고 잘 드시면서 당장 아픈 곳부터 치료하자고 했다.나에게도 주문을 걸듯 이렇게 믿자고 다 잘될 거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내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다만, 기력도 없어 더 깊어진 슬픈 눈빛으로, 그러나 목소리만은 어느 때보다 힘 있게 말씀하셨다. 내일 병원에 올 때엔 너무 일찍 오지 말고 늦잠도 자고 전화하면 천천히 오라고. 오늘 생일인데 네가 고생이 많았다고.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다. 일단 집에 가야 했다. 벌써부터 당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일 아침엔 늦잠도 자고 천천히 오라며 내 걱정까지 해 주시는 그 짠하디 짠한 내 아버지를 병실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