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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Aug 13. 2023

아버지의 선택

연명치료거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말기암 선고를 받고 큰 병원에 입원하기 전,  아버지가 한 가지 내게 부탁하신 건 다름 아닌 당신이 살고 계셨던 집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건강해져서 다시 돌아오면 되지 않겠냐고, 지금 건강상태로 어딜 들러서 간다는 건 무리라고 말씀드리는 대신 나는 다시 당신을 태우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계절을 보여주는 시골의 그 작고 익숙한 길 위의 풍경을 나는 참 좋아했다. 아버지는 당신도 오토바이를 타고 한번 더 달려보고 싶지만 되는 것도 안다며 힘없이 웃으셨다.  

비록 집에 도착해서도 차에서 내리진 못하셨지만, 그래도 만족하신다고 하셨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담당교수님의 배려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빨리 입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다림의 시간 동안 급격히 나빠지신 아버지는 큰 병원에 입원하고 바로 이틀째부터 중환자실에 가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면 얼굴 한번 보는 것도 여의치가 않을 것을 알기에 걱정을 한가득 짊어지고 있는데, 담당 교수님의 호출이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먹고 준비하셨는지 연명치료는 물론이고, 중환자실까지 거부하고 계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과 나란히 아버지를 바라보며 서서 그 이야기를 전달받을 때, 나는 아버지와 맞추고 있던 시선을 거두지 않고 끝까지 바로 쳐다보았다. 원망스러움과 짠한 마음을 담은 내 눈빛을 아버지 피하지 않고 계셨다.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버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보호자가 거부하면 중환자실로 보내드릴 수도 있다고 나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그 소리에 아버지의 귀가 번쩍 뜨였는지 힘없는 손짓으로 나를 부르셨다. 지독한 양반.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저렇게 잔인하게 그러시는 건가.


아버지는 나보다의사 선생님께 들으라는 듯 "아버지 말 들어. 아버지는 이제 더 미련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중환자실 절대 안 간다. 나는 말했고, 옮기면 아버지 너랑도 말 안 한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눈을 질끈 감으셨다.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는 의사 선생님께 화가 나신 거였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아버지께 그럴 거면 사인을 하셔야 한다고 했다. 연명치료 관련된 모든 걸 포기한다는 사인이었다. 기어코 있는 힘을 다해 쥐어지지 않는 볼펜을 부여잡고 이름을 고 있는 아버지.

틈만 나면 당신이 정신을 잃었을 때 연명치료를 할까 봐 두려워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나를 어떻게 해 달라는 부탁이 아닌, 제발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해 달라는 주문이라니.


이십 년이 다 돼가는 엄마의 죽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그때 엄마도 연명치료를 거부하셨고, 장기기증 의사까지 밝히셔서 우리를 놀라게 했었다. 그런데 버지는 연명치료거부도 모자라 중환자실까지 거부하시는 거였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게 본능일 텐데,

당신들이 믿는 신이라는 분이 주신 용기였을까?


그 일로 아버지는 고집불통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의사 선생님 입에서 "따님도 아버님 고집 아시잖아요?"라는 소리가 나왔으니 나도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마지막 모습이 무서울 수 있다며 굳이  당신의 임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아버지의 마지막도 참 당신 다운 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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