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식들은 그걸 숨겼지요. 그렇게 하려고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너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성을 찾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자꾸만 터져 나오는 눈물도 사치스럽게 느껴지며, 울 자격도 없다고 나를 탓해보기도 했네요.
당신께다짜고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무조건 믿고 전달할 수도 없었습니다. 확인이 필요했지요.
당신은 객사라는 말을 아시나요?
서울에 있는병원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문의를 했더니, 이곳 병원에서 보내준 CT를 확인하고, 당신은 거기까지 가는 것조차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강행했다가는 객사하실 거라고 책임 못 진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객사의 무서움을 설명해 주더군요. 그건 참 무서운 단어였어요. 겁을 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단어였지요.
병원이란 곳은 참으로 요망한 곳입니다. 방금 전까지 멀쩡해 보이던 사람인데, 환자복을 입고 나니 중환자로 변합니다. 아직 당신은 말기암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텐데 말입니다.하루아침에 갑자기 제대로 누울 수도 없다는 사실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지요. 베개를 몇 개씩이나 등에 기대고서야 간신히 쉴 수 있는 당신을 보는 가족들의 마음이야 말해 뭘 하겠습니까? 정작 당신도 바로 어제까지 바로 누워 잘 수 있었던걸 신기하게 생각하는 판국에요.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요즘이 제일 좋다고 하던 당신은 그렇게 중환자가 돼버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신 앞에서 울지 않고 별일 아닌 척 연기했던 건의미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면 속상해서 병이 더 빨리 악화될까무서워서 그랬던 건데, 오히려 당신이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사실 이 편지를 쓰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짐작만 하려고 해도 당신에 관한 일은 아직도 힘이 듭니다.
한번 생각이 그쪽을 향해서 그런 건지 곱씹을수록 확신이 되어갑니다. 재검진은 보통 어디가 크게 안 좋을 때 하는 거 아니냐고 짐작하며 물었지만,저희는 그냥 검사 중 한 가지를 빠뜨리고 못한 게 있다고만 했었지요.그 질문이 당신으로선 거의 확신하고 했던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으니까요.
당신이 입원하고부터 멀리 사는 다른 형제자매들도 병원으로 와서 당번을 정해놓고 당신의 병실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바쁜 자녀들이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씩 매일 당번을 바꿔가며 당신옆에 붙어있는데도 아무것도 묻질 않았지요.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당신이 왜 계속 병원에 있는 거냐는 그 흔한 질문 한 번을 하지 않았다는 걸 저는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나요? 당신도 우리처럼 연기를 하신 건가요?
혹시라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당신이 제일 무서웠을 텐데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그 시간들을 어찌 견디신 건가요?
저는 당신이 병원에 있었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시간도 잊고 매일 몽유병 환자처럼 깨어나면 당신을 찾아갔지요. 병원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는 의사의 말에 당신을 퇴원시키고겨우 하룻밤 집에 갔습니다.
그날의 당신 모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병명을 말했지만, 당신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한 얼굴로 오히려 저희들에게 울지 말라고 하셨지요. 59세의 젊었던 당신인데 아무런 원망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겠지만, 당신이 지금 죽는 건 억울하다고 하늘에 대고 악이라도 썼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습니다. 나라면 그랬을 것 같으니까요.
당신은 어쩌면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만 쉴 수 있어 요양병원에 가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곳이 마음에 든다고 감사하다던 당신입니다. 게다가 요양병원에서는 처음부터 장기기증을 부탁하셨지요. 다른 장기들도 모자라 임플란트도 기증하겠다고 양치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는 정말 두 손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하고 싶어 하던 그 모든 장기기증은 처음부터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암환자의 기증은 받지 않는다는 말을 전할 수 없어 그것마저 거짓으로 그냥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6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단순히 감기증세가 반복되는 게 걱정돼서 종합검진을 했다가 급성담낭암말기 판정을 받고, 두 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병을 한 달 가까이 속이고, 결국 원하던 장기기증 문제도 속일 수밖에 없었던 자식들은 어머니를 추억하면 죄송해서 또다시 마음이 아픕니다.
저의 어머니께 드리는 글에서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배울 점이 있기를 바라며, 첫 번째 편지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