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Sep 25. 2023

어머니께 드리는 두 번째 편지


저는 당신이 아파했던 두 달이라는 시간, 당신 없이 살아가는 내내 곱씹어 보게 됩니다. 

인간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맞습니다.

처음 당신이 암 진단을 받았때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드라마에 흔하게 나오는, 주인공이나 부모의 그 암이라는 병이 우습기 짝이 없었습니다. '쳇, 또 암이야. 툭하면 암 이래' 하며 지겨워했지요. 주변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병이 드라마에서만 그렇게도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겨운 드라마의 소재일 뿐 나에게는 절대 일어날 일 없을 것처럼 오만했니다.

그런데 막상 당신의 일이고 보니 말도 안 되게 많은 이들이 그렇게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 일이 아닐 뿐 언제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요. 죽음이란 건 그런 건가 봅니다. 미리 알았다고 덜 슬픈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알았다고 더 슬픈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건 같으니 말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요양병원은 치료와는 전혀 거리가 먼 곳이었지요. 연명치료는 거부하셨고, 모르핀 주사로 통증만을 없애주는 곳이었으니 죽음을 기다렸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다른 약을 드시던 분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 모르핀이라는 주사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자녀들은 크게 힘들지 않고 간병을 할 수 있었고, 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나눌 수 있었요. 당신이 통증으로 고통 속에 있었다면 가질 수 없었던 간들입니다.


때때로 그런 시간 속에 있으면서  당신이 아픈 이유로 그런 곳에 있지 않고, 어느 멋진 호텔에 머무르며 그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해드릴걸, 어떤 건 하지 말걸.

자식들은 뒤늦게 그런 후회를 하는 게 뭐  좋은 거라고 다들 학교에서 배우기라도 한 듯 같은 후회들을 합니다.

당신은 무슨 예언가라도 된 것처럼 사후에 당신의 제사에 다녀갈 자식들의 날짜까지 걱정하고, 애들 방학 때 죽는 게 좋겠다고 했지요. 그럴 땐 당신이 벌써 어느 경계선을 넘어갔다 온 건 아닌가 싶어 무섭기도 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 말로는 간혹 자신이 죽는 시간까지도 말하고 진짜 맞추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집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당신의  부탁에 구급차를 준비시키고, 아침 일찍부터 모두가 당신이 아침잠에서 깨어나길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말 당신이 원던 애들 방학중인 그날 세상 평온한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다가 가는 것이 복이라고 한다지만 너무 젊은 나이였어요. 

당신이 가고 저희는 진짜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현실이었지요. 실컷 슬퍼하기에 앞서 당장 당신이 묻힐 곳을 먼저 정해야 했고, 당신이 가는 길을 함께 슬퍼해 주신 분들께 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고 나서야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당신의 죽음은 그랬습니다.

장례미사 중 성당으로 찾아온 뜻밖의 손님은 당신의 가족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봉사는 소리 없이 말없이 하는 거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가셨지요. 아무도 몰래 오랫동안 후원하고 있었던 크고 작은 아이들은 당신이 가는 길에 진심의 기도를 선물로 드리고 가더군요. 저희는 8명의 아이들을 소개받으며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받아야 할 감사 인사를 감히 저희가 받다니요. 대모님은 당신이 가시는 길에 후원 사 가족들이라도 알게 해 주려고 직접 데리고 온 거라고 했지요. 아이들도 흔쾌히 당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 간다 온 것이고요. 찌 그 긴 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럴 수가 있었는지 저희들은 숙연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그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내셨으니 어떤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초연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향한 존경심이 차올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흙속에 묻히는데도 말입니다. 당신의 가족들과 당신이 보살핀 그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테지요.

당신이 가고 없는 지금, 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은 알 되었습니다. 당신만큼은 아니라도, 적어도 나 자신만을 위해 살다 가진 않아야겠다고요. 이 편지를 읽은 여러분들도 제 어머니를 통해 작은 교훈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이니까요.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 김 크레센시아.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께 드리는 첫 번째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