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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Nov 15. 2023

내 사위는 살인자다

아빠와 외할머니


경찰을 불렀다.

검은 머리카락과 흰머리카락이 적절하게 섞여 예쁘게 물든, 그 긴 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어 비녀를 꽂고 마당에 빨간 의자를 놓고 앉은, 허리도 굽지 않은 팔십이 훌쩍 넘은 나의 외할머니가.


창문을 열고 시골길을 천천히 관광 삼아 달리던 경찰차는 제법 또렷한 할머니의 외침을 들었나 보다.

"사람이 죽었어요. 저놈이 사람을 둘이나 죽여서 우리 집 지붕에 숨겨놨어요. 저놈 좀 잡아가요"하는 그 황당한 외침을 말이다. 경찰차는 빠르게 차를 돌려  우리 집으로 곧장 들어왔다.

두 명의 경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머니 사람이 죽었다니 무슨 소리예요?" 한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진짜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는지 평소보다 목소리가 더 쩌렁쩌렁 울리도록 "저기 지붕에 시체가 있다니까!" 하신다.


경찰차가 들어오고 하니 마당이 시끌시끌 손님들도 놀라서 일제히 경찰과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우리가 얼마나 궁금해하는지 모를까 염려되는 몸짓으로 상체가 다들 앞으로 쏠려 있다.

경찰도 시골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큰 사건이 터진 거라고 생각하며 진지한 모양새다. 그렇지만 엄마의 등장으로 끔찍한 살인사건은 금세 없던 일이 되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들 제자리를 찾았다.

"우리 엄마 치매라고요!"라는 단 한마디였다.

경찰은 바로 알겠다고 하진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아서 그랬는지 그래도 신고를 했으니 조사는 해야겠단다. 그때 갑자기  할머니가 경찰의 의지를 꺾는 한마디를 하신다."도깨비들 잘 논다. 어이구 춤도 잘 추네" 하시며 눈앞에 진짜 도깨비가 추는 춤을 따라 하듯 어깨까지 들썩이셨다.

경찰은 그렇잖아도 더운 날 누가 불이라도 지펴 더 더워진 것 같은 얼굴을 하며 더 이상 묻지도 않고 가던 길로 돌아가버렸다. 손님들 이미 일행들과 대화하며 음식을 먹느라 이쪽엔 더 이상 관심도 주질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도깨비들과 노느라 여념이 없으신데 단 한 사람, 마음 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분은 나의 아빠다.

"장모님은 아무리 정신없으셔도 그렇지. 왜 하필 나를 가리키며 저러시는 거야!" 역정을 내신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식의 사건을 지어내셨다.

게다가 손님들 많은 시간에 아빠가 나타나기만 하면 일부러 더 잘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치다.

지붕에서 커다란 구렁이 두 마리가 내려오는데 그 구렁이를 부리는 사람이 아빠라고 하시고, 화장실 똥통에 사람을 몇 명이나 죽여서 빠뜨렸다는 등의 온갖 황당무계한 일들을 아빠가 한 거라고 외치시는 할머니가 좋아 보일리는 없을 것이다.

아빠가 씩씩거리거나 말거나 외할머니의 치매 속 아빠는 온통 나쁜가 보다.

치매 걸린 친정 엄마를 모시는 입장에 있는 엄마는, 아빠께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치매노인이 그러는걸 뭘 그렇게 신경을 써! 하루이틀도 아닌데 러려니 하세." 하신다.

아빠는 엄마라면 껌뻑하시는 분이지만, 이럴 땐 힘들다는 내색을 하고 싶으셨나 보다. 얼굴을 붉히며 "하루이틀이 아니니까 화나지"라고 한마디 더 하지만, 엄마 편들어 주는 한마디로도 진작부터 화는 풀렸다는 몸짓으로 집안팎을 오가며 엄마일을 도와주다. 

나는 도깨비들과 놀다 지친 할머니가 또다시 배고프다는 소리에 방금 전 식사를 하셨노라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설명드리면서도, 마음은 온통 짠하디 짠한 아빠에게 가 있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멀리 인천에 사시는 외할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사셨다. 아빠가 벌어다 주시는 월급으로 팔 남매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인 데다 엄마도 식당을 하셨기 때문이다. 식당을 쉬는 일은 내 기억에 거의 없는데 그마저도 명절 하루 이틀이 다였다. 

그렇게 쉬는 날이라도 길을 나서기에 인천은 멀었나 보다. 아오지 않는 큰 딸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서였을까? 고생시킨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화살은 곧장 아빠에게 향했고, 딸이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바로 따져 들고 야단치진 못하셨지만, 이런 마음이 가슴에 쌓이고 쌓여 치매 속의 아빠는 온통 살인자요, 징그러운 뱀을 다루는 사람이 된 것이리라.


하지만  정신이 잠깐씩 돌아올 때면 아빠를 제일 어려워하시고 챙겨 주기도 하셨다. 엄마가 특별식으로 만들어 주맛있는 할머니 간식을, 아빠도 드시게 남겨두는 등의 방법으로 당신의 진심을 들키셨다.  


어떤 날은 아들집에 있지 못하고 딸네집에 와 계신 처지를 한탄하는 시를 써서 엄마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적 있는 데, 아마도 아빠 눈치가 보여 쓴 시가 아닐까 짐작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생각하는 옛날분이시니 더 그러실 만도 .

하지만 할머니도 아빠도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 걸 안다. 서로의 식사 여부를 걱정하시고 건강을 염려하시는 것도 자주 보이는 모습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안방을 내어 드리고 손님방을 쓰던 아빠는, 

밤이 되면 안방에 들러 이불을 챙겨 나오셨다. 

그 순간에 가끔 정신이 아와, 좌불안석하시는 할머니를 마주 하시면,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가지도 기억 못 하는 얼굴로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보이다.  

딱히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저 웃는 얼굴로 밤 인사대신하 정신없던 하루를 마무리하시는 모습은, 좋든 싫든 서로가 괜찮다고 고맙다고 하는 듯 보여서 그 순간들의 따뜻한 눈빛 인사가 내내 나의 기억 에 남 있다.


문예지에 올렸던 글입니다.

브런치님들께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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