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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Aug 07. 2023

귀여운 치매

할머니의 장난기

친정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던 나는 식당 하시는 친정 부모님 댁에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 딸을 데리고 놀러 갔었다. 남편이 출근하는 길에 우리 모녀를 내려주면 다시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식당일도 돕고 쉬기도 하며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삼촌이 외할머니를 엄마집에 모셔다 놓고 가셨다. 치매증상 때문에 모시고 왔노라고, 큰딸인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셨다고 다.


나는 치매 걸린 외할머니가 처음에는 불쌍하고 무서웠다.

치매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과 가족들의 고통, 기억하지 못하는 슬픔과 자꾸 밥을 달라고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나의 아버지에 관해서는 선택적으로 살인자라고 한다던지 하는 이상한 증상을 보이시기도 했었다. 그동안 멀리 사는 딸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살던 한풀이라도 하신 것 같았다.  

지만 이 증상도 누구 한 사람 신경 쓰지 않는 가벼운 증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치매증상이 없을 땐 누구보다 잘 챙기는 사람이 아버지셨다.

결과적으로 나는 곧 치매는 귀여운 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 치매라는 소식이 들려오면 걱정보다는 그분은 또 어떤 증상으로 귀여우실까? 하는 고정관념이 생긴 거다. 바로 외할머니 때문에 말이다.


작은 키에 허리도 굽지 않았고, 새하얀 긴 머리는 돌돌 말아 비녀를 꽂은, 곱고 단정한 분이 우리 외할머니시다.

겉만 봐서는 치매라고는 전혀 짐작도 안 되는 그런 입성을 하고서, 햇볕 좋은 날은 어김없이 마당에 의자를 놓고 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골 풍경을 넋 놓고 보셨다. 할 일이 없을 때면 나도 항상 앉아서 시골풍경을 감상하던 그 자리였다. 나중에 여쭤봐서 안 사실인데 할머니는 나처럼 풍경감상을 하신 건 아니었다. 멀리서 도깨비들이 춤추고 노는 걸 보신 거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식당 손님 중에 나이가 조금 있다 생각되는 아저씨들은 그렇게 볕을 쬐고 있는 외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두 손을 잡아드리며 꼭 한 마디씩 하셨다.

꼭 우리 어머니 같으시다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당신의 어머니 같다고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하거나 말거나 그렇게 젊잖게 앉아있는 외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사람들을 어찌 놀려줄까만 궁리하 계셨다.


외할머니의 진짜 치매증상은 다름 아닌 장난이었던 것이다.

자주 하시는 장난은 담뱃갑을 새것처럼 다듬어서  마당을 지나야 만 갈 수 있는 손님 화장실 가는 길목에 누가 실수로 새 걸 떨어뜨리고 간 것처럼 꾸며놓는 장난이었다.

그 장난은 외할머니가 제일 즐겨하시는 장난이 되었는데 그건 사람들이 대부분 할머니의 장난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던 길에 발견한 새 담뱃갑은 특히나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았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겐 얼마나 반가운 횡재였겠나. 지나가다 꼭 한 번씩 집어서 살펴보고 담배가 들어있지 않은 게 확인되면 한 번에 손으로 찌그러뜨리곤 휙 던져버리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 표정은 이게 뭐야, 속았잖아, 며 엄청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외할머니는 바로 그 모습을 노리는 것이다. 한 사람씩 걸려들 때마다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무릎을 탁 치며 많이 남지도 않은 이빨까지 드러내어 웃으시는 바람에 속임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웃는 건 아닌지 민망해하며 할머니가 계신 쪽을 돌아보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연기에 재능도 있으셔서 손님이 돌아볼 땐 괜히 민망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뒷일까지 생각하셨는지 멀리 떨어져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나를 보며 웃으다.

그러면 괜히 내가 꾸민 장난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운 나는 얼굴도 빨개지고 눈은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는 난처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말려도 소용없는 할머니의 장난을 야단치는 손님이 없었던 건, 어쩌면 어머니 같다던 그 마음으로 속아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은 같이 웃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 손님이었던 그분들껜 지금이라도 죄송했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다른 장난은 날마다 한 개씩 드셨던 사과를 이용한 장난이다.


사과를  드실 때 지금의 골드키위를 먹는 것처럼 작은 숟가락으로 속을 조금씩 파서 드셨던 할머니는, 사과를 다 드시고 나면 꼭 그 사과를 접시 위에 그대로 안 먹은 듯 뒤집어 올려두고선 사과 안 먹을 테니 "이거 가져다가 너 먹어라" 하셨다.

처음엔 정말 안드신줄 알고 깜짝 놀라며 "왜 안 드시고 저를 주세요?" 하곤 사과를 손으로 들면서 속이 빈 사과인 것에 더 깜짝 놀랐었다. 그러면 놀란 내 모습을 보며 또 무릎을 탁 치고 여전히 얼마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웃으셨다.


외할머니는 치매였기 때문에 매일 같은 장난을 하셨고 나는 매일 처음 당하던 날처럼 깜짝 놀라는 연기를 하며 외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렸다.

그런데 장난기 많은 우리 외할머니는 누군가 당신께 장난하는 건 싫으셨나 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안 좋으셨던 모양이다.


나도 할머니를 한번 속여볼까 하는 마음에 똑같 사과 장난을 했는데 어쩜 그렇게 잘 속으시던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그만 깔깔대며 웃고 말았다. 그렇지만 해서는 안 되는 장난이었다.


할머니께서 내가 한 장난에 어찌나 화를 내시던지.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셨던 모양이다.

딸 집에 와 있으니 사람을 우습게 보고 장난한 거며, 그 작고 귀여운 얼굴을 벌겋게 달구고 소리는 고래고래 지르셨다.

나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화가 풀리실 때까지 정말 싹싹 빌었다. 엄마는 할머니 달래드리느라 진땀 흘리셨고, 어른 놀린 버릇없는 외손녀가 된 나는, 그야말로 석고대죄 드려야 했다.

한참 동안 분을 삭이지 못하시다가 다시 치매증상이 시작되고서야 그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속아드리는 일만 했고, 할머니도 그 일은 잊고 장난만 계속하셨다. 지금도 가끔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숭숭 빠지고 얼마 남지 않았던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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