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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May 31. 2024

울리지 않는 전화벨

"거기도 비 오냐? 여기는 비가 많이 온다."

전화하시면 항상 날씨를 물어보셨던 나의 아버지.


집을 나서면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나와 그렇게나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궂 날씨에는 어김없이 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버지 덕분에 알게 된 것처럼 "거기도 비가 많이 와요? 여기도 엄청 쏟아지네요!" 하며 장단을 맞췄다.


아버지의 그 축축하고 뜨거웠던, 정이 담뿍 담긴 음성과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지 미심쩍어하며 속으로 킬킬대며 대답하던 나의 장난스러운 화.

"웬만하면 이런 날씨에는 밖에 나가지 말아라"  당부하시고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끝나면 미련도 없이 전화를 끊으시던 내 아버지의 투박한 화는 이제 오지 않는다.

누군가 옆에 있을 때면 갑자기 끊긴 전화에 대고 "네. 들어가세요 아빠" 하며 혼자 피식 웃곤 했는데.


늦게 마신 커피 한 잔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불면의 시간을 보내다 뒤척임을 멈추고 책상 앞에 앉았다.

어두운 밤은 흐린 날씨로 더욱 까맣고 이내 빗방울까지 떨구며 나의 기분까지 바닥으로 끌고 내려가다 결국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데도, 아버지는 내가 외국에 살고 있는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 좋아하는 눈이 내린다, 비가 내리고 있다, 꽃이 피었다,  앵두가 익기 시작했다, 동네 골짜기에 물이 말랐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었다.


비는 금세 그치고 아침이 밝더니만, 한낮은 이렇게나 환하고 뜨겁다.

피곤한 몸과 마음에 창가로 비스듬히 햇살이 비고 있다.

"아빠, 거기는 날씨가 어때요? 여기는 참 맑습니다."


아버지의 전화는 내가 간절히 원해도 걸려오지 않고, 밤은 또 오겠구나.

오늘은 꿈에서라도 전화받을 수 있게  찍 잠이나 와 줬으면 좋겠다.

앵두는 벌써 떨어지고 이렇게 비도 자주 오는데, 그 소식 바쁘게 전해준 당신 없는 지금이, 나는 때때로 힘들고 종종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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