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다른 동네에서도 봤다는 목격담이 들려오고 있어서 이곳에 살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그녀와 직접 마주친 어느 날의 일이다.
마트를 20미터쯤 앞에 두고 신호를 기다리며,장보기할 물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집에서 자른듯한 짧은 커트머리에 목이 늘어진 티셔츠 차림을 하고 굽이 조금 있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녀의손동작은 단 한 번을 마주치더라도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그것은어떤 허우적거림 같은 것이었다. 옷차림에 비해 유난히 혈색이 좋아 보이는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건넨 말은 "2천 원만 주면 안 돼요? 배고파서 그래요. 2천 원만 줘요. 빵 사 먹게." 하는 거였다.
보통 사람들이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곤란한 사정을 이야기할 때 쭈뼛거리거나 하는 머뭇거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당황하여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드리고 싶은데 현금이 없어요." 내게는 정말 현금이 없었다.나는 숨겨두고 안 준다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주머니를 구깃구깃 주무르며 아무것도 없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줬다.
마트에 가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카드 한 장 주머니에 넣고 나왔던 건데,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미안한 마음에 죄송하다고 말했더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을까?
갑자기 화를 내며 돌아서더니 길거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이런 거지 같은 것들이 돈 이천 원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 하고 말하며, 멈추지 않고 큰 소리로 비슷한 종류의 말을 끝도 없이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게 기분은 나빴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게 부담스러워진 나는, 신호가 떨어지자 누구보다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종종 길을 가다가 그녀가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 나에게 하는 것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돈을 구걸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할 물건을 고르면서도 내게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배달받을 물건을 골라 계산을 하고 마트를 나서며 나도 모르게 조금 전 그녀와 마주쳤던 곳을 살폈다.
그런데 또 다른 희생양이 그녀의 덫에 걸려 있었다.
이번에는 어린 학생이었다. 집에 갈 교통비를 달라며 학생을 붙잡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불쌍한 여학생은 얼굴까지 빨개져서 본인도 돈이 없다며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학생에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가라는 신호를 손짓으로 보내며 재빨리 그들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결제가 되는 세상이라 그런지 나같이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가 않다.
주머니에 단돈 천 원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누구든 그녀에게 걸리는 사람은 자칫 거지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저녁식사도중 내 이야기를 듣던 큰 딸이 자신도 그녀를 만났다고 했다.
자신에게도 돈을 달라고 했고, 카드밖에 없다는 말에 배고프다며 편의점에서 빵을 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현금만 고집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그녀가 나름의 해결책을 찾은 모양이다.
배고프다고 빵을 사달라던 그녀는 편의점에 들어가더니
빵은 물론이고 이것저것 다른 것까지(컵라면이나 음료수 같은 먹을 것들이었다고 함)당당하게 계산대위에 올려놓았다고 했다.누가 이 모습을 봤다면 서로 잘 아는 사람인 줄 착각할 만큼 당당해 보였다고 한다.
딸은 자신도 부담 됐지만, 오죽하면 저러실까 하는 생각에 계산을 해줬지만 고맙다는 한마디 없이 쌩하고 가버려서 씁쓸하다고 했다.
그런 딸에게 나는 웃고 넘어가라며 한마디 해줬다.
엄마는 오늘 바로 그 사람에게 단돈 이천 원이 없어서 거지 소리를 듣고 왔다고, 살다 보니 그런 날도 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