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Aug 20. 2023

뜻밖의 손님(계단 타고 내려온 비암)


살아가면서 걱정할 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럴 땐 종종 민거리를 내려놓고  잠시 그 속에서 벗어 나와 있는 것도 방법다. 나는 가끔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편을 택할 때가 있는데, 몇 년 전 장성 황룡강에서 열리는 꽃축제에 갔을 때가 그랬다. 그날은 운 좋게도 축제 전날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역시 좋았다. 함께 가자고 불러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여자 넷, 시끌시끌, 와글와글.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놔도 공감해 주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 돼 주었다.

색색의 꽃들로 가꿔둔 정원, 흐르는 물,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 시범운영하는 이동차까지도 사람이 지 않아 더 좋았다.  무엇보다 사진 찍을 때 전히 꽃으로 배경이 되는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장성 황룡강은 그렇게 내게 치유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던 평범한 추억으로 남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그리고 함께 한 일행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축제장소를 빠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계단만 통과하면 주차장으로 갈 수 있었다. 유난히도 가파르고 높았던,  돌로 만든 울퉁불퉁한 계단, 그 계단 양쪽 옆면 또한 경사가 심해서 계단으로만 지나다닐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세상에, 가파른 계단 위에서 뱀이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뱀이 당황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사람도 당황했지만 뱀도 분명 화들짝 놀란 게 분명했다.  


청룡열차가 가파르게 내리막 코스를 내려오기 전 잠시 멈췄다가 내려갈 땐 곧장 내려가듯, 뱀 자신도 앞일을 알지 못한 채 여유롭게 내리막 계단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 일행 중 첫 번째로  계단을 오르고 있던 언니가 제일 먼저 뱀과 맞닥뜨렸다.  바로 뒤를 따르던 누구도 앞의 상황을 짐작할 순 없었으니 누구든 차례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갑자기 앞에 가던 언니들이 괴성을 지르며 순차적으로 홍해 갈라지듯  펄쩍 뛰며 갈라지는 것이었다. 파도를 타듯  순식간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로 계단을 오르 상황을 알아볼 틈도 없이 내 귀에 정확히 꽂힌 마지막 비명소리는 "뱀이다"였다.

뱀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이미 한 계단을 더 올라섰 나도, 세 사람이나 제치고 겨우 도망쳤다고 생각했던 뱀도, 그 찰나의 순간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뱀이 순간 날아서 온다는 착각이 들었다.  사람처럼 계단을 온전히 내딛고 밟는 게 아니라 계단의 끝부분만을 이용하는 뱀의 모습. 내려오는 뱀을 피하려다 보니 생전 처음 뱀의 동선을 확인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뱀도 나도 서로 대치하는 자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꼭 내가 도망가는 방향으로 방향을 트는 것 아니겠는가?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그렇다고 "너는 이쪽으로 가라, 나는 저쪽으로 가겠다."라고 말해고 도망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상상해 보라,  그 기막힌 상황을.

되돌아 내려가는 것도 어려운 가파른 돌계단, 양 옆은 낭떠리지와도 같아서 어차피 사람은 갈 수 없었다.   다행히도 뱀이 그곳으로 몸을 틀었다. 녀석과 내가 옆으로 왔다갔다 하며 서로를 피하다 결국 녀석이 낭떠러지 쪽으로 내려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단 몇 초 안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내가 그때 어떤 걱정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쁜 꽃들과 좋았던 사람들과, 당황한 뱀과의 밀사건은 100살이 되어도 생생하게 무용담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든 거지가 될 수 있다.(그녀를 만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