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기르셨던 시골집 거위들은, 내가 결혼하고도 몇 년은 더 살아 있었고. 그들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닌 걸로 봤을 때, 우리 집 거위들의 수명은 특별히 더길었던 걸로 보인다.
수명이 길었던 만큼 거위와 있었던 사건들도 많아서 그중 손에 꼽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궁금해지는 게 있어 거위에 대한 정보를 나무위키에서 검색해 보았다. 우리 집 거위들만 그렇게 오래 살았는지도, 내가 중학생이던 그 당시에는 거위알 한 개 가격이 3천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시세가 어떤지도, 우리 집 거위들만 그렇게 무서웠는지도.
우선 거위의 수명은 놀랍게도 40~50년이며, 거위알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어 지금은 개당 8천 원 정도의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걸로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위는, 집 지키는 용도로 키우기도 한다고 했다. 사람에게 직접적인 부상을 입히지는 못하지만, 심리적으로 겁을 먹게 만들어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지간한 크기의 네발 달린 짐승들도 성질이 더러운 거위와 살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새 중에서는 성질 더러운 걸로는 알아준다고 하며, 지나가는 모든 것에 시비를 건다.라고 쓰여있다.
이 정보를 알아낸 사람은 실제로 거위를 키워 본 사람이거나, 키웠던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었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내가 하려던 말이 이곳에 다 적혀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무위키의 정보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내가 아는 거위들은 머리도 좋고 기억력 좋은 폭력배들이었다.처음 새끼 거위들이 알을 깨고 나와 졸린 듯 눈을 깜빡거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걸었을 때가 생각난다. 어릴 땐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 귀여운가 보다. 새끼 거위들도 존재 자체가 귀여웠었다. 걷기를 터득한 작은 거위들은 털도 뽀송해져서 제 어미를 따라 어디든 함께 돌아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최고의 장면은,모이그릇을 든 나의 어머니를 따라 어미거위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따라 인형 같은 새끼 거위들이줄줄이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꼭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보였었다.
어미를 따라다니던 새끼거위들은 어쩌다 어미 거위가 걸음을 갑자기 멈추기라도 하면,걷던 걸음을 급히 멈추려다 보니 몇 중 추돌 사고가 나서 뒤집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중학생이던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어머니가 모이를 줄 때면 일부러 나가 지켜보고는 했었다.
이렇게 귀여웠던 새끼 거위들은 금세 몸집이 커져서 어떤 거위가 어미 거위인지도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냥 모든 거위가 다 무서웠다. 한 마리가 까우까우 큰소리로 울어대면 흩어져 있던 다른 거위들도 전원 집합이었다. 자신들의 주인을 부모님으로만 정해놓고 다른 사람들 모두를 적으로 간주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물론이고, 우리 남매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골집과 인접한 곳에는 외지 사람들이 산책할만한 풍경 좋은 곳이 있었다. 특히 주말이면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풍경 좋은 이곳에는 공중 화장실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주말에 우리 집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은 90프로 이상 화장실을 부탁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당연한 일로 여기며 화장실을 상시 개방했다. 어릴 땐 그게 그렇게도 싫었다. 좋지도 않은 화장실이 창피하기도 했고, 누가 갑자기 찾아올지 몰라 정작 주인도 편하게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당에서 거위들이 놀고 있을 때만큼은 누구도 함부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은 안타깝게도 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어머니의 호위를 받고서야 화장실 이용이 가능했다. 이럴 땐 거위가 싫기도 했다가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난감한 일이 중학교 2학년 때 일어났다.
그 당시에는 가정방문이라는 게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남자여서 그랬는지 한 동네 살던 같은 반 남학생과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방을 깨끗하게 청소했고,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간단한 다과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거였다. 인원이 많은 동네는 하루에 모든 집을 다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특정할 수 없었고, 혹시 많이 늦어지는 경우에는 다음날로 연기될 수있어서, 오늘은 틀렸나 보다 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거위 떼들의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담임 선생님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비명소리였다. "윤영아~악~윤영아~"하며 점점 멀어지는 소리에, 나는 황급히 방문을 열며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 신고 주변에 있던 기다란 막대기를 본능적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달려 나가며 동시에 엄마를 불렀다.
엄마와 내가 나갔을 때 선생님도, 같은 반 친구도 벌써 저 멀리까지 거위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거위들은 뒤뚱거리면서도 제법 빠르고요란스럽게 선생님과 친구를 쫓고 있었다. 덩치도 크신 선생님은 졸지에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체면도 차리지 못하고 거위를 피해 도망가시다가 엄마를 발견하고 뒤늦게 달리기를 멈추셨다. 유난히 통통하고 하얗던 얼굴에웃으면 보조개가 깊게 들어가고, 목소리가 좋은 선생님은 새빨개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도 모자라 목소리까지 쉰 소리를 내며 엄마의 호위 속에 간신히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얼마나 민망해하시던지 거위가 이렇게 무서운 거냐며 가슴을 쓸어내시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가정방문을 끝내고가시면서도 어머니의 호위를 멀리까지 받으시고,다시 새빨개진 얼굴로 되돌아가셨다.
유난히도 수줍음 많고 조용했던 나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주시며, 전교생 앞에서 웅변대회와 독후감 발표를 해낼 수 있게 해 주신 분. 그 덕에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활발한 사람으로 바꿔주신 나의 영원한 영웅께서는 그날 그렇게 망가지셨다. 물론 내 마음속에는 근엄한 선생님의 모습에 인간미가 살짝 추가된 것뿐이다.
지금도 절대 잊히지 않는 나의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길 바란다. 혹시라도 정말 우연히 이 글을 선생님께서 읽는다면 단번에 당신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될 텐데, 그 점은 조금 두렵기도 하다.
선생님, 혹시 이 글을 보셨다면 그때 조용했던 제가 활발해진 것처럼, 선생님도 너무 진지한 모습 말고, 이런 일도 추억하고 웃으며 미소 속에 나이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거위는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 엄마가 돼서도 그 성질은 여전했다. 이들의 횡포가 심해지자 부모님은 급기야 거위들을 가둬두고 키우셨다. 부모님이 아니면 먹이를 줄 만큼 베포 큰 사람은 그때까지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거위의 숫자는 20마리에 가까웠다.
그날은 가족모임이 있던 걸로 기억된다.
8남매가 장성하여 가족을 이루고 보니 절반만 모여도 시골집은 북적북적했고, 넓은 들판을 마주한 아이들은 신이 나서 천진난만하게 마음껏 뛰어놀았다.
형제자매들도 오랜만에 만난 데다, 찻길에서 노는 것도 아니어서 내버려 두었다. 거위도 농장에 가둬져 있었기에 신경이 쓰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숫염소 사건이 그랬듯 일은 꼭 그럴 때 일어난다. 모두가 방심한 그때.
숫염소도 무서웠었지만 , 거위들도 만만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실제로 숫염소와 거위들은 싸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서로가 서로의 더러운 성질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농장은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어른들 몇몇은 농장이 보이는 언덕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버지는 닭이나 거위들의 모이를 주고 계셨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거위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우리는 이야기를 멈추고 농장을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때 당시 다섯 살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조카아이가 언제 따라 내려갔는지 농장에 간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손자가 따라온 것도 모르시고 여느 때처럼 농장문을 열고 들어가 모이를 주고 계셨다. 그런데 거위의 무서움을 알 리 없는 조카아이도 그곳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가관이었다. 거위 떼들이 그 긴 목을 바닥으로 뱀처럼 기어가듯 늘어뜨리고 아이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들이 내는 소리와 떼거지로 몰려가하는 짓은 어느 폭력단체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아이를 가운데로 몰아넣고 거위들이 주위를 둥글게 에워쌌다. 그 모습은 멀리서 보면 꽃처럼 보이기도 했고, 백조왕자들 같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폭력거위들이었다. 우리는 다급하게 아버지를 소리쳐 불렀다. 뒤늦게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 거위들은 다시 내려놓으라는 듯 까우까우 울고 난리들이었다. 조카 녀석도놀라서 울고, 어른들도 다 같이 놀랐지만 뒤늦게 다친 곳이 없는 걸 알고는 엄청 웃었다.
목격자인 우리들은 지금도 거위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를 이야기하며 또 웃는다. 조카도 지금은 커서 씩씩하게 군대도 다녀오고 회사생활을 잘하고있는 걸 보면 거위들이 저질렀던 횡포가 트라우마로 남지 않은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