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정비된 재래시장옆 주택가 골목에 또 다른 시장이 열렸다. 그곳에는 좁은 골목 한쪽 벽면을 따라 약간의 간격을 두고 할머니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온 채소와 곡류들은 그 양도 많지 않았다.적극적으로 팔았다면 벌써 팔고 집으로 돌아갔을 양이었다.실제로 어떤 할머니의직접 담근 단무지는 인기가 좋았는지 제법 큰 김치통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구경만 하고 돌아가려는데유독 마음을 잡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손님이 오지 않는 것보다, 오면 어쩌나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손님이 바로 앞에 있는데 고개도 들지 못하고,떨리는 손은 자꾸만 이미 쌓아둔 석류와고추만 만지작거리고 계셨다.아무래도 오늘 처음 장사를 나오신 모양이었다.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으니 금세 자리를 떠난 그 할머니 앞에 내가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내놓은석류는 너무 익어 벌어진 것도 있고, 너무 작아서 속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내가 석류에 관심을 보이니 옆에서 쪽파와 무를 내놓고 앉은 할머니가 더 좋아하셨다.
농약 한번 안 한 거라며 대신 자랑도 해주셨다.
그제야 석류 할머니도 "나이가 드니 신 것은 아무도 먹질 않아서 갖고 나왔어. 많이 줄 테니 가져가요 새댁."하고 말하며 판매에 나섰다. 진짜 장사꾼은 따로 있었다. 새댁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조금 더 다가가 앉아 작은 석류 하나를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가격을 여쭤보았다.
아직 가격을 정하지 못한 할머니의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귀여운 할머니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저절로 벌어진 석류처럼 웃고 있는 내게 할머니는5개에 오천 원을 불렀다. 저렴한 가격이었다.
할머니는 "네, 주세요." 하는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5개를 담더니작은 석류 한 개를 봉지에 더 넣어 주셨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어, 한 개 더 넣으신 것 같은데요?"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가져가, 가져가." 하며봉지를 내 손에 떠넘기듯 쥐여 주셨다.
나는 봉지를 건네받으며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할머니."를 외쳤다. 고개 한번 들지 않던 그 할머니는 내 큰 목소리에 얼굴을 한번쳐다보더니 다짜고짜 건네준 봉지를 빼앗아 갔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집에 고추 없지? 입맛 없을 때 된장에 찍어 먹어요. 어서 가, 어서 가." 하며 다짜고짜 고추 한주먹을 봉지에 넣어 주시더니 이제는 또 어서 가라고 나를 떠밀었다.
나도 못 이긴 척 웃으며 받아 들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드렸다. 골목을 벗어나기 전뒤를 돌아보니, 할머니는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석류와 고추를 몇 번이고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