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천에서 닭이나 돼지를 잡기도 했었다. 그날은 방학하는 날이라서 그랬는지 유난히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옆동네 살던 친구와 갈림길에 가까워져 헤어질 무렵 내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옆동네와 우리 동네의 갈림길 중간에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바로 그 밑에 있는 냇가에서 그날 돼지 한 마리가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친구와 손 인사를 나누다가 아직은 살아서 냇가 바위 위에 억지로 눕혀진 돼지와 내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옆동네 아저씨는 내가 눈을 피할 새도 없이 커다란 망치로 돼지의 머리를 곧장 내리쳤다.돼지가 죽어가며 내는 소리는 짧았어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지만,이미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그 광경은 내 머릿속에 사진을 찍어 놓은 듯 선명했다. 특히 나를 보던 그 눈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비명 소리를 들은 마을 아저씨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작은 동네였기 때문에 내가 누구 집 딸인 것을 금방 알아보고, 놀라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나를 향해 " 기다렸다가 고기 좀 가져가거라" 하고 인심 좋게 권했다. 이미 단단히 충격을 받은 나는 싫다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만 계속해서 가로저으며 한걸음에 집까지 내 달렸다.
그런데 또 내가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그날 반찬으로 돼지고기 볶음이 올라왔다. 평소 내 식성대로라면 최고의 반찬이었을 텐데 고기를 보자 내 속은 바로 뒤집혔다. 정확히는 어머니가 요리하실 때부터 고기 냄새가 나를 심하게 자극했었다. 속이 울렁거려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별 걸 다 먹던 내가 고기 냄새만 풍겨도 밥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방학식날부터 시작된 증상은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고기 요리는,냄새부터 강하게 나를 거부했다. 게다가 더 미치겠는 건 돼지고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모든 고기를 다 먹지 못하게 됐었다. 냄새부터 거부되는 건 돼지와 소고기였고, 다른 고기들은 냄새는 그럴싸해도 입까지 가져가는 게 되지 않았다.
싫은 음식은 어떻게 요리해도 알아지는 게 신기했다. 몰래 먹이려고 육수만 조금 넣어도 나는 금방 알아차리고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고기 때문에 예민해져서 살이 찌지 않았고, 갈수록 말라갔다.
그 해 가을 운동회가 끝나고 남들 다 먹는 짜장면도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고기가 들어있는 건, 아니 아주 작은 고기 한 점이 실수로 닿기만 해도 입맛은 뚝 떨어져 버렸다.
생선은 또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내 앞에선 같은 날부터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먹을 수 있던 건 갈치와 꽃게, 새우, 조개 종류가 전부였다. 고등어나 굴비 같은 생선도 먹을 수가 없었다. 돼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건데도 그냥 그렇게 돼버렸다.
이것은 일종의 병이었다. 그것도 고급 병이다.
먹을 수 있는 게 무려 갈치, 꽃게, 새우라니. 80년대 시골에서 막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당키나 할 음식들이던가?
그래도 어른이 되고 아이도 낳고 살다 보니, 고기반찬을 직접 요리하게 되고, 고기중 치킨이나 닭볶음탕 정도는 먹게 됐으며, 다른 생선이나 회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도 어른이 되고 여러 모임을 하다 보니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모임에서 장소를 정할 때면 고기를 못 먹는 나를 배려해서 생선구이, 조림, 해물탕, 해물찜등 주로 해산물 식당으로 정하게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 곤혹스러웠다. 차라리 고깃집으로 갈 때가 마음은 더 편했다.
우스갯소리로 남편은 나와 연애할 때, 데이트 비용이 적게 든다며 자주 놀렸었다. 맛있는 걸 사주고 싶은데 자꾸 분식집이 좋다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결혼해서 살고 있는 지금은 맛있는 고기를 못 먹는 게 많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한 번만 먹으면 업어주겠다고 하는 진정성을 보이며 나를 설득한다. 그걸 먹이겠다고 얼마나 맛있는지 설명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라도 먹고 싶지만 입까지 가져가는 것조차 안 되는 걸 어쩌랴.
가끔 비싼 해산물만 선택적으로 좋아한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우리 집 외식은 90% 이상이 한식이나 해산물이다. 인생의 거의 절반을 이렇게 살아온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