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Sep 22. 2023

어쩌다 보니 채식주의자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식 날, 나는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천에서 닭이나 돼지를 잡기도 했었다. 그날은 방학하는 날이라서 그랬는지 유난히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옆동네 살던 친구와 갈림길에 가까워져 헤어질 무렵 내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옆동네와 우리 동네의 갈림길 중간에는 작은 다리가 있었. 바로 그 밑에 있는 냇가에서 그날 돼지 한 마리가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친구와 손 인사를 나누다가 아직은 살아서 냇가 바위 위에 억지로 눕혀진 돼지와 내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옆동네 아저씨는 내가 눈을 피할 새도 없이 커다란 망치로 돼지의 머리를 곧장 내리쳤다. 돼지가 죽어가며 내는 소리는 짧았어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그 광경 내 머릿속에 사진을 찍어 놓은 듯 선명했다. 특히 나를 보던 그 눈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비명 소리를 들은 마을 아저씨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작은 동네였기 때문에 내가 누구 집 딸인 것알아, 놀라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나를 향해 " 기다렸다가 고기 좀 가져가거라" 하고 인심 좋게 권했다. 이미 단단히 충격을 받은 나는 싫다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만 계속해서 가로저으며 한걸음에 집까지 내 달렸다.


그런데 또 내가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그날 반찬으로 돼지고기 볶음이 올라왔다. 평소 내 식성대로라면 최고의 반찬이었을 텐데 고기를 보자 내 속은 바로 뒤집혔다. 정확히는 어머니가 요리하실 때부터 고기 냄새가 나를 심하게 자극했었다. 속이 울렁거려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별 걸 다 먹던 내가 고기 냄새만 풍겨도 밥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방학식날부터 시작된 증상은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고기 요리는, 냄새부터 강하게 나를 거부했다. 게다가 더 미치겠는 건 돼지고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모든 고기를 다 먹지 못하게 됐었다. 냄새부터 거부되는 건 돼지와 소고기였고, 다른 고기들은 냄새는 그럴싸해도 입까지 가져가는 게 되지 않았다.


싫은 음식은 어떻게 요리해도 알아지는 게 신기했다. 몰래 먹이려고 육수만 조금 넣어도 나는 금방 알아차리고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고기 때문에 민해져서 살이 찌지 않았고, 갈수록 말라갔다.

그 해 가을 운동회가 끝나고 남들 다 먹는 짜장면도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고기가 들어있는 건, 아니 아주 작은 고기 한 점이 실수로 닿기만 해도 입맛은 뚝 떨어져 버렸다.

생선은 또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내 앞에선 같은 날부터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먹을 수 있던 건 갈치와 꽃게, 새우, 조개 종류가 전부였다. 고등어나 굴비 같은 생선도 먹을 수가 없었다. 돼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건데도 그냥 그렇게 돼버렸다.


이것은 일종의 병이었다. 그것도 고급 병이다.

먹을 수 있는 게 무려 갈치, 꽃게,  새우라니. 80년대 시골에서 막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당키나 할  음식들이던가?


그래도 어른이 되고 아이도 낳고 살다 보니, 고기반찬을 직접 요리하게 되고, 고기  치킨이나 닭볶음탕 정도는 먹게 됐으며, 다른 생선이나 회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도 어른이 되고 여러 모임을 하다 보니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모임에서 장소를 정할 때면 고기 못 먹는 나를 배려해서 생선구이, 조림, 해물탕, 해물찜등 주로 해산물 식당으로 정하게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 곤혹스러웠. 차라리 고깃집으로 갈 때가 마음은 더 편했다.


우스갯소리로 남편은 나와 연애할 때, 데이트 비용이 적게 든다며 자주 놀렸었다. 맛있는 걸 사주고 싶은데 자꾸 분식집이 좋다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결혼해서 살고 있는 지금은 맛있는 고기를 못 먹는 게 많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한 번만 먹으면 업어주겠다고 하는 진정성을 보이며 나를 설득한다. 그걸 먹이겠다고 얼마나 맛있는지 설명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라도 먹고 싶지만 입까지 가져가는 것조차 안 되는 걸 어쩌랴.

가끔 비싼 해산물만 선택적으로 좋아한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우리 집 외식은 90% 이상이 한식이나 해산물이다. 인생의 거의 절반을 이렇게 살아온 내가

최면치료라도 받아서 그때 그 돼지 눈빛을 지울 수 있다면 다시 육식을 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채식을 하게 된 나로서는 먹거리 문제가 평생의 숙제처럼 여겨진다.






작가의 이전글 뱃머리를 돌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