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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윤영
Mar 19. 2024
그 꽃 버려!
날씨 탓인지 감기로 며칠 고생하고 정신이 없었다.
코로나가 유행할 때부터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던 나였는데, 이
번 감기는 코로나만 아니었지 그에 버금가는 힘듦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목은 따끔거리고 코막힘에 두통까지 더해져 약만 먹고 나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아파도 입맛은 잃지 않는 탓에 감기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세 떨어져 주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플 땐 맛있는 걸 먹고
약 먹고 잠만 푹 자도 반은 벌써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기에
예쁜 꽃
까지
보면
더
좋은데, 이번에 아플 땐 꽃까지 볼 수는 없었다.
나는 평소에도 꽃을 좋아하지만 아프면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며 힘을 얻고 살아난 이야기 속의 어느 가난한 화가처럼
나는
아픈 와중에도 꽃을 보면 힘이 난다.
실없는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이
제
정말 몸은 다 회복한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꽃에까지 생각이
미
치자 재작년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꽃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아버지
는
나이가 들면서 꽃이 더 좋아
진 건
지, 원래 좋아했지만 표현을 안 하셨는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가까이에서
본 아버지는 꽃을 굉장히 좋아
하
는 사람이었다.
서툰 내 운전 실력도 걸림돌로 여기지 않았던 아버지는 해마다
봄이면
벚꽃길로 나를 안내하셨고,
나무가 잎을 새로 내놓았을 때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연둣빛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보여 주셨다.
당신은 산책하며 매일 본다고 하셨지만, 처음 본 것처럼 손뼉 치며 좋아하시니 나는 꽃도 보고 아버지의 웃는 모습도 실
컷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아버지도 꽃을 버리라며 놀라 뒷걸음치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은 아버지의 정기검진을 위해 어느 대학병원을 찾았을 때 일어났다.
대학병원이라는 곳은 예약을 했어도 두 시간쯤 대기하는 일은 흔히 있었다.
우리 부녀는 병원을 찾을 때마다
운 좋으면 한 시간, 보통은 두 시간 정도 대기시간을 예상하고 기다렸다.
6개월마다 한 번씩 각종 검사를 하고 시술을 위한 입원을 통보받거나 다시 6개월 후에 오라는 결과를
듣기 위한
시간이었다.
긴장되고
초조
한
그 기다림의 시간은
그냥 앉아 있기만
했
는데도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부녀를
지치
게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부녀도 꾀를 내었다.
대기
시간 동안
병원
앞
시장
을
돌아
보
며 시간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
싱싱한 채소와 해산물은 구경만 해도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데다 지루한 시간도 금세 지나가게 만들어 주었다.
그날도 우리 부녀는
예정된
검사와 접수
를
마치고
즐겁게
병원을 나섰다.
그런데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아버지가 인도와 도로를 경계로 심어 둔 울타리
나무 앞에
가시더니
쌀알만큼
이나
작은 꽃 한 송이를 따서 당신 코에 갖다 대었다.
그러고는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얼른 한
송이를 더 따서 다급하게 향을 맡아보라
며
나에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 든
밥톨만 한 그 꽃
의
향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부녀는
그 작은 꽃
을
각자 코에 대고 웃으며 행복해했다.
아버지는 그걸 발견한 당신이 자랑스러워 연신 내게 웃으며 동의를 구하는 듯 눈만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도 너무 좋
아
신호가
바뀐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홀린 듯
그 은은한
향을
즐겼
다.
어차피 병원
대기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각자 눈을 감고 향을 즐
기고 있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아버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끔찍하다는 듯 들고 있던 꽃을 길바닥에 휙 던져 버리셨다.
그와 동시에 내게 하신 말씀
은
"그 꽃 당장 버려!"였다.
깜짝 놀란
나도 반사적으로 꽃을 던지며
"왜요?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
더니, 아버지 다음 말씀이 "벌레 있어 벌레!"였다.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내 눈을 보던 아버지는 던졌던 꽃을 조심스레 주워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확인시켜 주
셨
다.
정말
쌀알만큼 작고 흰 그 꽃 속에서 먼지
만 한 작은 벌레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표보다 더 작아 보이는 벌레였다.
순
간 나는 아버지
반응에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평소 내가
시골에만 가면
뱀이 무섭네, 징그럽네
할 때에도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뱀 그런 게 뭐가 무섭
냐고 큰소리 뻥뻥 치던
분이었다.
더
큰 벌레에도 꿈쩍 않던
아버지가 그렇게 작은 벌레에 보인 반응치
고는 행동이 너무 크지 않은가 말이다.
'
아이고, 아버지. 진짜 깜짝 놀랐다고요!'
딸이 웃어버리니 그제야 아버지도 멋쩍어지신 건지 눈으로만 보고 코에는 갖다 대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부녀는 시장 구경을 하는 동안에도 그 꽃을 버리지는 않고 손에 들고 다녔다.
대기 시간이 되어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내게 종이컵에 물을 받아 오시더니 꽃을 넣으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꽃도 벌써 물을 먹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 속의 그 작은 벌레도 함께였다.
집으로 가져와서도 한참 동안 버리지 않고 꽃을 보긴 했지만 나도 다시 향을 맡아보진 못했다.
대학병원까지 갈 일은 다시
없어야겠지만 혹시 그 앞 시장이라도 가게 된다면 이번엔 벌레가 있는지부터 살핀 후 아버지 살아계실 때 그랬던 것처럼 두 눈 지그시 감고 그 은은한 꽃향기를 추억하고 싶다.
종이컵 안에 든 꽃 사진은 휴대폰 앨범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아버지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지금 내 처지 같아 집착하며 찾다 결국 두 손 들었네요.
그래도 소중한 추억은 제 가슴
속에 따뜻하게 잘 저장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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