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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an 08. 2024

님아, 그 못을 뽑지 마오.


남편은 꿈에서도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 같다.

가끔 잠꼬대를 하면, 손님을 만나 인사하고 허공에서 손을 꼼지락 거린다.

큰 아이 어릴 적에는 야간작업도 많을 때여서 그랬는지 잠꼬대도 한층 실감 나게 했다.


한 번은 화장실 가려고 일어난 줄 알았던 남편이 방문을 나서지 않고 벽에 붙어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뭘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바라보다.

순간,  어느 모임에서 들었던 지인의 일화가 생각났다. 자신의 남편이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걸어가더니 다짜고짜 옷장 문을 열고 소변을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등짝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고 화장실로 데려다줬데, 자신이 조금만 늦었으면 대참사가 일어났을 거라며 치를 떨던 이야기였다.

순식간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침대에 있던 내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갔다.

'저 사람, 오늘 맥주 많이 마신 것 같았는데'

그럴 사람은 아니라지만 만취한 사람이 무슨 짓은 못하겠나 싶어 남편을 돌려세우고 방안의 불을 켰다.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맙소사, 벽에 못을 박아 걸어둔 달력을  손에 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못도 함께였다. 그런데 남편은 아직도 꿈속에 있다. 나는 "아니 멀쩡한 달력을 왜 뜯어내고 그래? 무슨 꿈 꿨어? 하고 물었다.

하지만 제대로 대답할 리가 없었다. 아직 꿈속에 있었으니 말이다.

달력과 못을 내 손에 곱게 올려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든 남편을 보며 웃음만 나왔다. 황당한 건 벽에 뚫린 구멍의 크기였다.

단단히 박혀 있던 못을 얼마나 잡고 돌렸는지 짐작이 갈 만큼 구멍이 커져 있었다.

각종 집안 행사를 표시해 둔 그 달력은 사이에 그렇게 자기 자리를 영원히 잃게 됐다.

꿈속에서 또 뭘 고치게 될지 몰라 그때부턴  뭔가를 걸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래서일까? 남편은 자동차 고치는 기술 최고다. 자면서도 일하는 남자가 뭔들 못 고치겠는가!



큰일 났다. 허락도 받지 않고 갑자기 우리만 즐거울 추억을 소환해 버렸다.

이 글을 남편이 보면 삭제하라는 압박이 들어올 텐데,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혼자 웃플 남편에게 미리 사죄를 청해야겠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하하하

추신, 지금 이 글을 읽고 웃었다면 그대들도 공범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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