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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an 19. 2024

끝까지 간다.


어떤 일들은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시골 친구나 동년배를 만나면 오래도록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어 준다.

어느 집 앞은 개가 쫓아와서 무서웠다는 이야기, 주전자 들고 술 심부름 다니다 홀짝거리며 시고 혼이 난 이야기, 누구네 집 자두 서리하다가 걸릴 뻔 이야기 등이 그런 들이다.

그중에서도 내게 인상 깊게 남은 추억 중 하나는 첫 자전거 탔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옛날 시골에서는 지금처럼 어린이가, 어린이 자전거를 가질 수 있는 집은 흔치 않았다.

하여 만만하게 눈에 띄는 아버지의 자전거가 인생 첫 자전거가  주었다.


몇 살인지 정확 기억할 순 없지만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이었다. 는 국민학생(초등학생)이었고, 크게 다쳐 본 적은 없던 겁 없는 어린이였다. 

여자아이들은 보통 고무줄놀이나 작은 돌멩이 공기놀이를 했는데, 남자아이들은 한 사람이 어른 자전거를 끌고 나오면 다 같이 그 자전거만 따라 달려 다니며 놀고는 했다.

나는 고무줄놀이를 하면서도, 번갈아가며 자전거를 타는 남자아이들이 부러워 놀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내 관심은 온통 자전거였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마당 한편에 가만히 세워져 있을 때 올라앉아 놀아도 재미있었다. '따르릉따르릉' 소리를 내며 짓으로 달려봐도 신이 났다.

페달이 겨우 발끝에 닿았을 뿐, 제대로 굴릴 수 없는 커다란 자전거였는데위에 앉아 있는 게 마냥 좋아서 동생과 서로 앉겠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기를 내어 자전거를 끌고 무작정 동네로 나갔다. 왼발로 땅을 밀어내며 오른발  페달에 올려놓고 자전거에 의지하며 발로 타고 니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 속담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

외발로 타는 것도 좋았지만, 진짜 원하는 건 제대로 타는 것이다. 게다가 는 운 좋게,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줄 친절한 오빠지 있다.


자전거를 타보니 왜 빨리 시도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오빠가 잡아줘야 했지만 나는 꽤 빠른 시간 만에 넘어지지 않고 타는 데 성공했다. 

페달을 있는 힘껏 한 발로 밀어 굴려주면, 그 힘으로 바퀴가 굴러  다음 페달이 다른 쪽 발에 닿는다. 

순간, 포착을 잘해 다음 발로 마중 나가 달을  있는 힘껏 굴려줘야 지만 그것도 잘 해냈다.

오빠도 잘 탄다고 칭찬해 주었다.

비포장 흙길이지만 제법 평평한 곳에서 그렇게 몇 번이나 성공하고 난 후 오빠를 졸라 곧장 내리막길로 갔.  

동네 안에서만 타는 건 거리가 너무 짧아, 타고 내리는 일만 반복되는 느낌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자전거에 올라앉아 숨을 가다듬고 오빠에게 밀어줘도 된다고 신호를 주고 나서 출발했다.

리막길은 생각보다 훨씬 가파른 곳이어서 순식간에 동네를 벗어다. 머리끝이 쭈뼛 서게 무섭기도 했지만, 굉장한 기분이었다.

아찔한 내리막은 페달을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자전거를 굴려 었다. 무 빠르게 말이다.


내리막을 지나 동네를 벗어나게 되자, 생각지도 못했던 치명적인 실수를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

속도는 빠른 데다 한 번도 스스로 달리는 거에서 내려본 적이 없으니 그저 멈춰줄 때까지 달리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장이라도 뛰어내려야 되는데 속도가 빨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름이어서 바람도 시원하고 공기도 좋았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당장은 넘어져도 좋으니 알아서 멈춰 주는 평지가 빨리 나와주길 도해야 했다.


하지만 바라던 평지가 보일 때쯤 다시 한번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매일 학교에 오갈 때에도 가장 무서워했던, 사나운 개가 쫓아 나오는 파란 지붕집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집에 사는 원수 같은 그 개는 돌멩이를 던질 듯이 겁을 주거나, 막대기를 휘둘러도 겁을 먹기는커녕 사람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쫓아와 매번 도망치듯 지나가야 했던 곳이다.

없던 힘을 짜내가며 페달을 열심히 굴파란 지붕집 앞을 지나갈 즈음에는 미리 두발을 들어 올렸다.

개가 쫓아오더라도 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파란 지붕집이었다. 그런데 개는 없었, 내가 탄 자전거는 켓처럼 빠르게 그곳을 지나가버렸다.

때까지 개가 보이지 않아서 허무했던 적은 었는데,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빵빵한 풍선이 터지듯, 긴장했던 내 몸도 힘을 잃었다.

평지는 그렇게 끝나버렸, 급경사는 아니었지만, 다시 시작된 내리막길에 뛰어내릴 용기도 사라져 버렸다.


자전거는 결국 끝까지 갔다. 

학교가 있고. 사람도 많은 큰 사거리까지.

내가 사는 동네와는 달리 자동차가 제법 많은 사거리였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그 자동차들을 보자 내 몸 순식간에 자전거와 분리되었다.

내 몸은 자전거를 밀어냄과 동시에 가볍게 공중을 날다.

'지금 뛰어내릴까', '지금이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끝이다'수천 번의 망설임과 걱정도 무색하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흔들림 없는 정확한 착지다.


사거리의 많은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내팽개쳐진 자전거와 나를 번갈아 쳐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자전거를 던지고 그 위에서 체조하듯 뛰어내리는 어린이를, 나뒹구는 자전거를.


때때로 창피함은 사람의 동작을 빠르게 만는 것 같다.

나도 빠르게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오던 길 되돌아갔다. 쳐다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투명 인간으로 세워 놓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 자연스러웠어.'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자서는  수도 없으니, 타고 갈 수도 없, 전거는 커다란데 나는 한없이 작고, 길은 먼데 내내 오르막길이고,

이번에 돌아갈 때도 역시 파란 지붕집은 지나가야 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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