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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Mar 06. 2024

분노의 양치질


눈에서 불이 번쩍하더니 이내 캄캄해졌다.  

끔찍한 고통에도 '악' 하는 외마디 비명도 조심스러운,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었다.


치약이 듬뿍 묻은 칫솔순식간에 이빨 열차의 궤도를 벗어나 오른쪽 내 눈동자를 강하게 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면대 앞에서 양치질을 하던 내가 칫솔로 내 눈을 찌른 것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에 두 눈을 꼭 감은 채 한동안 세면대를 붙잡고 그대로 춰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멀쩡한 왼쪽 눈을 슬그머니 뜨고 오른쪽 눈도 떠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치약까지 들어간 오른쪽 눈은 쓰리다 못해  순간에뭔가 날카로운 것이 찌르고 있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며 떠지지 않았다.

물을 틀어놓고 치약만이라도 씻겨 나와주길 바라며 계속해서 씻어냈다.


한참만에 조금씩  떠지기 시작하는 눈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른쪽 눈은 이제 막 경기를 끝낸 복서의 눈과 같았다. 너무 빨갛게 변한 데다 부어오른  눈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나는 종종 양치하다 잇몸을 찌르곤 해서 남모를 고통을 견뎌야 할 때가 있다.

힘주어 닦지 않으면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단지 느낌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정기검진 때마다 이를 너무 세게 닦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충고도 무시하고 내 고집을 부렸다.


그날 밤 나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않은 벌로 인공 눈물을 끝도 없이 어뜨려야만 쓰라린 눈의 고통을 금이나마 줄이 잠을 청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눈의 통증이 약해지긴 했지만, 감고 뜨는 기본적인 움직임에도 쓰라림이 느껴졌다.

그래도 살만해진 나는 한쪽 눈만 뜬 채, 휴대폰 채팅창을 열어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렸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더니, 모두가 한목소리로 당장 병원에 가 보라고 야단이었다.

눈이 얼마나 중요한데 장난하는 거냐며 잔뜩 겁을 주었다. 일 아니라며 또 내 고집을 부리다가 아차 싶었다. 병원 가기 싫어하는 것도, 남의 말 잘 안 듣고 내가 옳다고 우기는 것도 이제 고쳐야 한다.

주려고 하는 말이라도 괜히 고집부리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가 진짜 눈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그때 가서 누굴 탓하겠는가.


떠밀리듯 찾아간 병원에는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다.

안과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내 순서가 되어 들어간 진료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비교적 젊은데 무뚝뚝해 보였다.

그 선생님은 다쳤다는 눈만 쳐다보며 어떻게 하다가 다치게 됐는지 물었다. 그러고는 망원경처럼 생긴 기계 위에 내 턱을 올려놓으라고 더니 반대편에서 내 눈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다친 이유를 듣던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으며 처음으로 내 두 눈을 쳐다보았다. 

고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양치하다가 눈을 찌를 수가 있나요? 이런 경우는 의사 생활 시작한 뒤로 처음 보는데, 정말 양치질하다가 다친 게 맞나요?" 하면서 다 들리는 혼잣말로 "그럴 수가 있나?" 하는 거였다.

안 그래도 창피한데, 어디 학계에 보고라도 해야 할 것처럼 물으시니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러게요. 그럴 수도 있더라고요. 분노의 양치질을 해서 그런가 봐요!" 하고 웃으며 대답다.

전혀 웃을 것 같지 않던 선생님 웃어버렸다.

상황에 맞지 않게 씩씩한 내가 황당하셨던 거다.


웃는 얼굴로 바뀐 선생님은 내 눈을 꼼꼼히 진료해 주시며 "지금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엄청 아팠을 것 같네요. 여기 눈에 난 상처 보이시죠? 긁힌 상처가 꽤 심하네요. 정말 큰일 날 뻔하신 겁니다." 하 사진 속 내 눈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늦은 밤이라도 응급실을 찾아가야 한다고도 셨다.


진 속 내 눈에는 동공에 하얀 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칫솔모가 스치고 지나 간 자국이었다.

"이 상처 없어지는 건 맞죠 선생님?"

사진을 보고 잔뜩 겁먹은 나는 장난하며 받아치던 방금 전 일을 반성하 말 잘 듣는 착한 환자가 되어 애처롭게 물었다.

선생님은 늦지 않게 병원에 온 점을 칭찬해 주시며 다 좋아질 거라고 말씀하셨다.

처방해 준 약을 다 먹고도 낫지 않거든 다시 꼭 병원을 찾으라고 하시면서 문을 열고 나가는 내게 "분노의 양치질은 이제 그만하시고요!"라는 충고도 잊지 않으셨다. 

머쓱해진 나도 내게 다짐하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제 안 합니다"라고.


'평소처럼 내 고집대로 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내 눈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약봉지를 품에 꼭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분노의 양치질은 하지 않습니다.

가끔 그런 버릇이 튀어나올 땐 칫솔을 고쳐 잡고 속도를 조절하지요. '잘못하면 다시 눈을 다칠 수가 있다'라고 생각하면서요. 잘못된 습관은 고쳐야죠.

암요. 고칩니다. 고칠 거예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갈 수 있으니 이제부터 칫솔은 부드러운 것만 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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