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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비를 내릴 수 없다

상호 텍스트성에 기반한 문학 에세이

by 서본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중략)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中>


수험생활을 하며 진득하게 공감하였던 시인데, 20대가 되어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 담기어 있다. 백석 시인이 외롭고 낯선 곳에서 과거를 성찰하며 느낀 좌절감과 무력감이 점차 가라앉고, 그리하여 끝내 평안과 의지에 도달하는 모습이 나를 위로하였다. 각자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시인에 대한 동질감을 일으켰던 이 시는 아마 이 글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적 흐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나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것을 20대가 되어 깨달았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은 더 이상 부모님이 보살펴주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결정됐던 이 보편적이고 당연한진실을 나는 유독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성인 같고, 언니 같고, 선배 같은데 나만 제자리걸음, 어쩌면 뒤처지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나를 굴려가는 것, 앞으로의 대학 진학, 취업, 가정을 꾸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고 어릴 적 지니었던 야망과 수많은 소원들은 그저 현실적인 걱정으로 사그라들었다.


많이 울고, 고뇌하고, 성찰했던 날들이었다. 도망치고 싶었고, 존재도 없는 그 어딘가에 화도 냈다. 내가 목표했던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현실이 미웠고 능력이든 노력이든 부족한 나 자신도 싫었다. 어느 순간에는 나의 의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운이, 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굴려가는 것 아닌가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였다.


그런 마음이 한동안 나를 휘젓던 때가 지나고, 시간이 약이라는 상투적인 말처럼 슬픔과 한탄과 세상에 대한 미움은 싸락눈처럼 앙금이 되어 가라앉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굴려갈 수도, 내가 나를 굴릴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선 더 이상 사색하고 싶지 않아 졌다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침체된 마음을 달랬다.


외로운 마음만이 남은 지금, 나는 종종 나의 존재가 나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힘든 상황에 놓일 때면 나무 한 그루가 여러 외부 상황을 버텨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기도 하는데, 이 세상을 이루는 같은 자연물로서 묵묵하게 시련에 맞서는 태도를 본받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백석 시인이 의지를 다질 때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떠올린 것도,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무언가에 기대어 내면을 가다듬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내겐 정해지지 않은 이 세상 oh yeah

이제부터 내가 그릴 수 있는 세계

지금 시작해보려 해

보고 마주한 것들 또 듣는 것들도

내가 느낀 모든 것들도

나의 한 페이지가 될 거야

(중략)

영부터 시작될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태연/멜로망스, page 0 中>


대학에 입학하며 보고 마주하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영부터 시작된 나의 23살의 한 페이지에 기록하는 날들은 설레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진로에 대한 끝없는 방황과 왕복 3시간 통학, 낯선 동네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는 것, 적성에 맞지 않는 수업을 듣는 것, 과외 아르바이트에서 오는 스트레스, 쉽게 회복되지 않는 건강 상태가 우울감을 불러일으켰다


맞벌이이신 부모님과 주변에 몇 남지 않은 친구들에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곤란해, 하루가 끝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혼자 울곤 했다. 계속된 우울감에 어느 날은 마음이 벅차 무언가에 이끌리듯 학교 상담센터를 찾아갔던 것이다.

첫 상담이 진행되는 40분 동안, 나의 이야기를 하며 세 번을 울었다. 울면서도 내가 속에 쌓인 것이 많았구나 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상담사께서는 나에게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느꼈던 감정, 그 감정의 이유를 물어보셨고 이 과정에서 나는 평소 지니던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상담을 통해 나 자신을 타자화하며 더 정리된 시각으로 나를 이해하고 나의 근본적인 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상담을 받았을 때 TCI라는 검사를 하였는데,

이는 선천적인 기질과, 환경의 영향을 받은 후천적 성격을 구분하여 제시하는 검사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부분은 내가 위험회피 성향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나는 불확실한 것에 대해 선천적으로 유독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이 있었다.


내가 굴릴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뿐 아니라, 굴릴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를 종종 괴롭혔다. 대인관계와 학업, 가족에 관한 일과 건강 등에서 생겨나는 모호함과 무력감이 나를 막막한 감정에 밀어 넣곤 했다.


네 번째 상담이 진행되던 날, 나는 상담을 종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상담사에게 털어놓기 위해서 일상 속에서의 부정적인 모습을 찾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잠깐 고민하고 묻어두고 지나갈 일들을 오히려 부각하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내가 싫었다.


원래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도움을 쉽게 요청하는 성격이 아닌 데다, 내 인생에서의 문제는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지쳐있고 수동적이었던 태도를 돌아보았고,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앞으로의 삶을 마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상담을 종결했다고 해서 마음이 온전히 평안해진 것은 아니다.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은 나를 종종 불안에 빠뜨리고 긴 시간의 통학과 적성에 맞지 않는 수업은 여전히 힘들다. 대인관계도 쉽지 않다.


학교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 지난 수요일, 나는 인터넷을 하다가 한 기도문을 발견하였다. 종교는 없지만, 평소 생각하던 인생관과 온전히 일치하며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문장이었다. 나를 가장 많이 흔들어 놓던, 진로에 대한 고뇌와도 상통하는 내용이었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루하루 살게 하시고

순간순간 누리게 하시며

고통을 평화에 이르는 시련쯤으로 받아들이게 하옵고,

(중략)


<라인홀드 니버, 평온을 비는 기도 中>


사실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걱정과 불안은

바꿀 수 없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한 충분한 용기가 없고,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주하는 것 아닐까?


노력한 것에 대한 정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프면 어떡하지 등... 우리의 삶 속 피어나는 여러 걱정들은 다양하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고민은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데, 우리는 항상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은 않는다. 사실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조차 혼란스러울 때가 많고, 그래서 가끔은 할 수 있는 일도 포기하거나 그저 밀려오는 감정에 얼어버리는 등 인생의 방향키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가고, 우리는 자주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인생에서 원인과 결과는 일대일 대응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불확실성 앞에서 주춤한다.


이는 위에 언급한 백석 시인의 시와도 상통한다.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 중 백석 시인은 전자보다는 후자를 두드러지게 느낀다.


이는 아마 자신의 의지로 삶의 시련을 극복해 보려다반복되는 좌절에 무기력해진 모습으로 보인다. 현대인들 또한 삶이 흔들릴 때 여러 종교와 미신 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증명되듯이, 의지만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우리의 삶은 백석 시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을 구분했다면 그때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의 여부이다. 우리의 노력, 능력, 운 혹은 그 외 여러 요소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최선을 방해하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내적 갈등을 겪는다.


나는 과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를 안다면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 입시를 준비하며, 취업 준비를 하며, 다이어트를 하며 마주했던 ’나 자신과의 싸움’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나 또한 몇 년 동안 수험생으로서 최선을 그렇게 외쳐댔지만, 내 최선은 과연 최선이었을까.


내 최선을 방해했던 요인 중 하나는 건강이었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 와중 소화기관이 불편해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날락했었다. 월경 주기가 찾아오면 그날은 공부를 쉬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하루종일 누워있었고, 유독 추위를 많이 탔다. 시험이 다 끝나고 건강검진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방해 요소였다.


나의 최선을 방해했던 또 다른 요소는 외부에 있던 나의 시선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면서 차창에 비친 사람들의 옷차림, 그들의 핸드폰 속 화면,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다가 문득 내 시선이 나 자신에게는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겼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내 발걸음과 시간과 돈과 웃음과 농담, 걱정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고 이것이 나를 불행하게 하지는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웃게 하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걱정 끼쳐드릴까 봐, 조원에게 민폐가 될까 봐, 친구들과 친척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등의 이유로 나는 타인을 위한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中>


수험생활 중 나의 시선은 주변 친구와의 비교, 외부 환경의 영향, 지나온 날들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때 세웠던 너무나 많은 공장들이 떠오른다.


입시를 준비하며 플래너 뒷부분을 일기장처럼 이용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이 너무 힘든 날의 그 마음을 토로했고, 옆자리 친구의 성적을 알게 되었을 때의 열등감을 털어냈고, 목표와 성적의 괴리에서 오는 막막함을 뱉어냈다.


기형도 시인도 그의 젊은 날, 나와 같이 누구에게 드러내기 부끄러운 이 감정들을 많이도 기록한 듯하다. 그가 인생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느낀 부끄러움, 열등감, 허탈함의 감정들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위로하였다. 청춘(青春)이라는 따뜻하고 희망찬 어감과는 다르게, 방황하는 날들 속 작아지는 스스로를 표현한 점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예’와 ‘아니요’의 사이 어딘가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하고, 몇 번이고 반복하며 연습할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의식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삶의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나의 적성과 흥미를 이끄는 일부분에만 선택적으로 노력하는 시간도 괜찮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일부러 완벽주의를 외면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교육 이해와 교육 심리’ 강의 중 학습한 내용인데, 목표는 내재적 목표와 외재적 목표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의 목표는 온통 외재적인 것들이었다 부, 명예, 명성을 꿈꾸었고 나의 노력은 모두 그의 수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기가 하락하고 목표에 달성하지 못하는 경험이 늘수록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재적 목표를 일상 속에 끼워 넣었다. 내재적 목표는, 행동 그 자체에서 가치를 느끼는 목표를 말하는데 나의 입장에서는 건강과 자기 계발이 그것이다.


친구의 영향으로 모바일 앱을 통해 프랑스어를 배우고, 통학하는 시간 동안 추천받은 책을 읽는다 매주 목요일 필라테스를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으려 하니 비빔밥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행동 과정에서 성취의 기쁨을 얻고 스스로의 성장을 체감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요즈음 나의 마음에 일어나는 것은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마음이 정화되면서 삶에 대한 활력이 불어넣어 진 듯하다. 우울감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라고 한다. 상담의 1.5배 효과를 불러온다고 하여, 헬스장에 다녀 볼 생각이다.


내가 느끼는 또 다른 감정은 '감사함'이다. 수험생 때는 감사함을 의식적으로 느끼려 했었는데 요즈음은 은은하게 감사한 감정이 느껴진다. 여러 사건 사고를 다룬 기사를 접하고 나면 나는 참 무탈하고 복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힘든 일들이 지나가고 결국 전화위복이 되었던 경험들을 떠올리면 그때 버텨주었던 나에게 감사하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새로운 도전이 하고 싶어졌다. 이전에 마주했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미래의 나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미련이 남는 것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어쩌면 바라왔던 목표를 이뤄보고 싶다.


내 뜻으로 나를 이끄는 힘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힘 중 어느 것이 강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의 시선이 나에게 더 집중되는 것, 그래서 바꿀 수 없는 것들에 힘쓰지 않고 내 인생에서 최선이 필요한 순간마다 온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나무는 비를 내릴 수 없다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가 오면 젖은 땅에서

뿌리로 열심히 수분을 빨아들이는 그뿐이다


나무는 해를 떠오르게 할 수 없다

햇빛이 비추면 온몸을 뻗어

최대한 이파리를 보이는 그뿐이다


나무는 눈을 멈출 수도 없다

눈이 퍽퍽 내리기 전 이파리를 떨구고

묵묵히 추위를 버티는 그뿐이다



나무는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평온하고, 기회가 오면 용기 있게 최선을 다하며, 시련에 묵묵하게 버팀으로써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를 보인다.


삶이 힘들 때, 백석 시인의 시 속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떠올리자. 가끔은 우리 삶 속 통제 불가의 영역은 제쳐두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어두운 사색은 접어두자.

2019년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는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살지 못하고, 실패로 가득한 현실에 좌절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젊음이라는 선물’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목소리가 명대사로 남아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은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


<드라마 눈이 부시게 中>


나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더 애틋하게 여기고 인생의 매 순간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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