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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d 채드 Mar 22. 2022

#1.하늘색 치마

첫사랑이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의 소심하지만 세심한 사랑 기억의 색

 하늘을 올려다본 건 오랜만이다.


 사실 지나치는 주변 시선들 너머로 들어오는 푸른색 하늘은 늘 봐왔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응시하듯 물끄러미 바라본 건 언제였나 싶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만 이내 그 파란 마음에 의문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고 또 의문이 들고 바라보다 잊어버리고, 그렇게 반복하며 한편에 올라오는 마음은 먹먹함이었다. 순간 조금 작은 구름 끝자락에 걸칠 듯 말 듯하다 드러난 햇살 한줄기가 내려쬐며 갑작스레 눈을 찡그렸다. 손을 얼른 눈가로 가져가며 생기는 작은 그늘막 덕에 눈을 제대로 다시 떠볼 수 있었다.


 가렸던 손을 천천히 움직여, 손가락 사이로 빛을 다시 받아들이도록 여는 동안 낯설지만 아주 낯익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오랜 기억 속에 있는 낯익은 모습과 장소여서 어딘지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는 그러한 장소 같았다. 하지만 그 공간의 분위기 느낌과 색상, 그리고 만약 향기가 있다면 그 향기마저도 낯설었다. 그래서 낯익지만 낯선 곳이라는 표현이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조금 더 집중해 보니 주변에 푸릇한 잔디가 흐트러져 뭉텅 위치하고 있는, 약간 얕은 비에 젖은 듯한 흙 운동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운동장 멀리 보이는 파란색, 그래 그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하늘빛의, 눈부시지만 계속 바라볼 수 있는 그 하늘색 치마가 나풀거리는 게 정확히 보였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 있다가 처음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배치받고 그 낯선 분위기에 어색함으로 걸어 다니게 된, 진학 후 맞이하게 된 첫 봄날의 얘기다. 내 친구들은 하늘색 치마라 불렀고 는, 정작 는 그녀에 대해 아무런 호칭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어떤 단어로 한정 지어 버리거나 부르고 싶지 않고 그냥 그 자체로, 생각으로 존재를 알고 있으려 했을 뿐이다. 그렇게 먼발치의 모습, 가까이 스치듯 지나치며 느껴지는 엷은 향과 너무도 짧아 저장할 수 없는 단위의 기억나는 음절을 내뱉는 목소리, 가까운 왼쪽 얼굴과 멀리서 본 오른쪽 얼굴, 하늘거리는 긴 하늘색 치마의 주름의 움직임과 그 진폭과 주파수들이 기억에 저장되고 있었다. 그렇게 그 모습을 하나씩 모아서 나만의 기억으로 만들어가고 쌓아가던 어느 날, 그녀의 이름을 전해 듣고 는 그날 가슴이 뛰어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이 지속되는 두근거림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존재를 인지하고 점점 많은 신경 쓰기 시작하게 된 지 3개월, 그리고 모든 걸 알게 된 듯한 하지만 단지 이름만을 알게 된 지 또 다른 3개월이 지난 어느 초가을. 진정시킬 수 없는 가슴을 정말 손으로 눌러가며 심호흡하며 진정시키며, 이것은 마치 생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혼자만의 결정으로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하는 듯한, 그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그 거사를 치르려고 작정한 날이 되었다. 아무리 작심하고 계산하고 시뮬레이션해보고 연습해보고 하였지만 결정할 수 없었고 계산할 수 없었던 날이었지만 그날은 주어지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정해진 거라고 알 수 있었다. 왜냐면 내일이 더 이상 그대로 올 것 같지 않은 그런 오늘임을 알려주는, 그걸 읽고 알게 된 것이다. 매일 같이 타고 오르내리는 버스를 그냥 보내고, 떨리는 낯선 번호의 버스에 뒤따라 올라타고, 또 따라 내리고, 또 조금 따라 걷다가, 그제야 겨우 말을 붙이고, 그래 알겠어 반가워, 라며 그는 그녀와 기약 없는 그런 짧은 순간의 끝맺음으로 돌아섰다. 또다시 그녀는 그녀의 이름이 아닌 하늘색 치마로 돌아오고, 어지러움에 돌아선  기억인지 상상인지 바람인지 아쉬움인지 몇 번씩 생각해보던 시뮬레이션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추가된 기억을 안고 발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왜  심장만 뛰는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지 의 열일곱 마음으로는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청춘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련한 기억 같은 첫사랑의 모습은 이렇게 순전히 혼자만의 추상화로 그려지고, 더 이상 정물화나 풍경화로 진행할 수 없었다. 이후 몇 차례 구성과 같은 딱 맞춰진 그림을 그려보려 했지만 심약한 마음과 뛰는 심장은 매번  앞길을 가로막고 시선을 차단하여 나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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