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는 개나 주고~
얼마 전 둘째 친구들 네 가족이 모여 캠핑을 했다. 대여한 공간에 차 1대를 주차하고 옆에 텐트를 치게 되어 있었다. 텐트칠 공간 3개를 빌렸고, 차는 3대였다. 그런데 한 공간에 거실을 만들어야 하니 내 차는 캠핑장 밖으로 이동하라는 거다. 왜 내 차를 바로 지목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중 나이가 가장 어려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우리 가족은 제일 먼저 도착해서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는데... 하..'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차를 이동해야 한다는데, 평소 같으면 괜찮은 척 웃으며 네~ 했을 거다. 그런데 그날은 내 입이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싫어요~왜 제가 빼요~??"

오! 그런데 기분이 썩 괜찮았다. 뒤늦게 억울해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한 사람을 험담할 일도 없었다. 감정을 담아두지 않는 것 괜찮은데? (하지만 결국 제일 어린 내가 이동 주차했다.ㅠㅠ 머 이때는 꽤나 자발적이었기 때문에 진짜로 괜찮다.)
좋은 게 좋은 거는 대체 누가 좋다는 거지?
친구도 가족도, 먼 친척도 없는 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작아질 데로 작아진 나는 누구라도 친구가 되어 준다면 한없이 고마웠다. 백일이 갓 지난 딸을 데리고 놀러 갈 곳이 남편의 외할머니댁 밖에 없던 시절이다. 돌아보니 내가 나를 내향이라 오해하며 살아온 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외할머니와 친구 먹는 내향이라니..
부모라면 응당 자식 키우는 일을 1순위에 놓기 마련이고, 3년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면서 몇 되지 않는 친구들 마저도 만나기 쉽지 않았다. 결혼 전 직장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과 연락이 뜸 해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여유는 없었다. 일과 육아는 자연스럽게 나를 고립시켰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사회 부적응자다 라는 전남편의 가스 라이팅이 아니었어도 나는 아이들을 위해 외출을 쿨하게 포기할 사람이었다. 둘째가 중3이 된 지금도, 다음날 강의가 있다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나다.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고 에너지를 얻는 나이지만, 그보다 먼저! 일의 완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지향형 여자 사람'도 나이다.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의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고,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첫째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워킹맘에게 오전 커피타임에 참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나와 몇 시간을 보내고 출근해서 일하고 나면 살림할 에너지가 부족해진다.
우선순위. 일과 아이들 외에 다른 것에 정신을 쏟기엔 체력이 부족했다. 아니,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부족했던 건 마음의 여유였던 것 같다. 취미와 사람들을 포기하지 못했던 남편에게 보란 듯이 모든 걸 포기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부모라면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지 라는 말을 당당하게 뱉어낼 수 있도록 밑밥을 완벽하게 깔아 놓는 철저함이라고 해야 할까.
가족을 가장 우위에 놓지 않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모든 관계가 불편했다. 사람들의 호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마음. 스스로를 사회와 떼어 놓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없었다. 그저 억울하고 서러웠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6개월 정도 일을 쉬면서, 나도 딸아이와 함께 엄마 1학년이 되었다. 첫째 때 하기 힘들었던 녹색어머니도 되어보고, 모닝커피 타임을 지나 점심을 먹고, 다시 커피 한잔을 더 하며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생겼고, 언니 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10년이 지나도록 정을 붙이지 못하던 이곳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이 늘어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상하네? 난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
'사람들과 지내는 일이 왜 어렵지 않은 거지? 어째서.. 재밌는 거야?'
소중한 것이 생기면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해진다. 새롭게 이어인 인연, 내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다시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난 어느 쪽이든 괜찮아~"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게 되었고, 정말 괜찮은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모른 채 하게 되었다. 가족의 이름으로 맺어진 사이거나 아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 사이에서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대체 머가 좋다는 거야?)
괜찮은 척하고 집에 돌아온 날은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 남아있는 불편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그 모습을 바꾸어 얼굴을 드러내곤 했다. 그 불편함을 마주해야 하는 아이들이나 나 자신은 영문도 모른 채 '괜찮지 않은' 하루를 보냈을 게 분명하다. 처리하지 않은 감정은 하나도 좋지 않은 나를 만든다.
엉뚱한 곳에 화를 풀어가며 살아가는 삶은 만족스러울 리 없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억누른 감정 때문에 정작 내 기분은 하나도 좋지 않다. 아, 물론 나만 좋자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아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안해야 상대를 편하게 대할 수 있으니까....
내 마음을 잘 살펴보는 연습을 시작했고, 이제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마음에 감정 찌꺼기가 많지 않으니 괜히 아프던 몸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심지어 아이큐가 올라간 기분까지 든다. 심플하다. 활짝 웃는 얼굴에 전보다 밝아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덤으로 눈가 주름을 잔뜩 얻었지만 머 '행복 주름'이려니 생각하니 나쁘지 않다.
잊지 말 것! 좋은 게 좋으려면 나부터 좋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