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고 오는 것들

결혼과 이혼사이 _ 인정하고 행복해지기

by 꿈꾸는 냥이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 시청률이 1퍼센트여도 마지막 회까지 보고야 마는 나란 여자는 연애도 결혼도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합니다. 첫사랑을 맘에 들어하지 않던 아빠와 사랑 사이에서 아빠를 택했던 일이 마음에 아주 오래 남았을까요. 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그 연애도 그리고 결혼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조금 이상해도, 불편해도, 억울해도 내가 더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잡은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신혼 3년을 시부모님과 보냈습니다. 2층 주택의 1층이 우리 집, 2층에 부모님이 살았는데요. 우리 집은 단 하루도 문을 잠근 날이 없습니다.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 집. 이유는 이렇습니다.


1) 대문이 있으니 굳이 잠그지 않아도 된다.

2) 진돗개가 있으니 도둑이라도 들게 되면 개가 짖어 알려 줄 것이다.

3) 가족끼리 벨을 누르고 집에 들어오는 건 말이 안 된다.


집은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누군가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집에서 3년을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아침 7시 안방 문이 열리고 시어머니가 들어오십니다. 급히 할 말이 있었겠죠. 또 언젠가 새벽 2시, 술에 취한 시어머니가 오십니다. 예쁜 손녀가 보고 싶으셨답니다. 어떤 날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너무 슬픈 인생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하루 중 언제 오실지 모르니, 늘 불안하고 긴장한 채로 지내야 했습니다. 어느 주말 아침엔 친구분들과 함께 오셨는데요. 잠옷 바람에 인사를 하고 집 구경하시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내 모습이 마치 제3자가 바라보는 시점으로 기억납니다.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너무 당연해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저만 이상한 사람이었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시댁의 제사와 차례 음식까지 도우러 오셨던 우리 엄마 앞에서 시어머니에게 그동안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는 일이 생겼습니다. 몇 년 전 아파트 입주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의 이야기를 꺼낸 시어머니는 당신은 별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며느리가 너무나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이셨죠. 저는 엄마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날은 제가 전남편에게 2400만 원을 집어던지며 욕을 퍼부었던 날입니다. 그날 아이들과 같이 시댁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12월 24일. 시댁에 들렀다 모임에 갈 예정이었죠. 시어머니는 저를 보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잔소리를 이렇습니다. 왜 대출까지 받으며 집을 사는지 모르겠다. 차곡차곡 모아서(시어머니식 표현) 집을 사야지! 이번에 멀 그리 많이 샀느냐. 냉장고와 세탁기는 왜 사느냐.

소파를 너희들끼리 사러 갔더구나. 내가 가야 깎을 수 있는데. 왜 너희들끼리 다 사느냐 나도 얼마나 가고 싶었는데.


13년 전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 잘 모르니 너무 작은 용량을 사기도 했고, 이미 수차례 고장이 나서 바꿀까 하던 것을 곧 이사할 거니 그냥 쓰자던 것들입니다. 냉장고는 소리가 계속 나면, 하루정도 코드를 뽑아두었다 연결하면서 쓰고 있었고, 세탁기는 몇 달에 한 번씩 부품을 갈아야 했었죠. 이런 얘기들을 변명처럼 늘어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 부부가 한심했습니다.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나이가 40이 넘었는데..


그날 등 뒤에 앉아 있던 딸들은 그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며느리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혼자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배웠을까요? 곧 돈을 주실 테니 2400만 원어치만큼 혼나야 하는 내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차마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딸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게 그냥 묻어두었던 일을 시어머니는 본인 입으로 다시 꺼내시곤, 며느리가 너무 이상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 좋습니다. 둘만 있을 때 했던 말도 안 되는 말씀들도 다 좋다 이겁니다. 왜 엄마 앞에서 이 얘기를 꺼냈을까요. 그날 저는 악을 쓰며 울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놀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멈출 수 없었을 게 분명합니다.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건 바보라서가 아닙니다. 내가 선택한 내 삶이니까. 어떻게든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털어놓고 제가 들은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프다는 말 외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난 기억나지 않지만, 네가 힘들었다니 사과 하마."


정말 기억을 지운 걸까요? 난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기만 한데요.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불안과 긴장의 시간들. 뭘 하든 잘한 일은 없고, 비난받아야 하는 생활. 서서히 물들어가는 가치관.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고정관념.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내 지난 20년을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니까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엄마에게 덜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1순위에 두는 K장녀의 선택은 잘 사는 척하기. 행복한 척 하기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바라는 게 정말 그런 걸까요? 내가 정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는 걸 알게 된 건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입니다.


엄마의 항암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주치의의 판단. 그리고 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엄마의 결정으로 항암을 중단한 어느 날 엄마에게 들었던 사과. 아주 오래전 널 데려왔어야 했는데 라는 그 말이 머리를 깨웠습니다. 죽음을 앞둔 엄마가 평생 숨겼던 마음을 꺼내놓으셨던 거죠. 볼 때마다 말라가던 딸. 연락이 한동안 없으면 죽었는데 시댁에서 숨기는 게 아닌지 무서워서 연락을 못하셨다는 그 말에 그저 우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엄마는 마지막 두 달을 병원에서 보내고 돌아가셨습니다. 장폐색이 나아지지 않아. 두 달간 아무것도 못 드시고, 수액으로 살아야 했는데요. 한 달이 지나도록 사위는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모르핀에 취해 사람을 못 알아보기 시작하던 어느 날, 드디어 나타난 사위에게 바쁜데 어떻게 왔냐고 밥 먹고 가라고 하셨다는 엄마. 그날 10분의 만남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다시 엄마를 보러 가지 않은 전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의 장례식 내내 만취해 있는 모습.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목소리가 떠나갈 듯 힘찬 그 모습. 엄마가 돌아가신 후 단 한 번도 괜찮은지 묻지 않았던 그 사람에게 대체 나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쓰며 살았던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내 사랑이 끝났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전 끝난 우리 관계를 바로 보게 된 것이겠죠. 우리는 딱 그 정도 관계였던 겁니다.


이혼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이별이라고 심플하게 말할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분리가 되는 엄청난 사건이며 그 과정에서 가족 모두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특히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이 얻게 된 불안과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습니다. 엄마가 힘들면 아이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게 됩니다. 늘 미안한 부분입니다. 더 안정된 환경에서 지내게 하는 게 좋겠지 라는 생각으로 결정한 일이지만, 사실 자신은 없었습니다. 처음 걸어보는 길이니까요.


오래전 널 데려오지 못한 건,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모두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말씀을 듣고 난 내 삶에 정말 만족하는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홀로 선 나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언제나 가족이 우선인 내가 '가족'과 '나'를 나란히 놓을 수 있도록 엄마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인 것 같습니다.


나와 사랑하는 두 딸들, 우리 셋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살아 있을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입니다. 그리고 이때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행복한 순간들이 모여 행복해지는 습관을 만들어 갑니다. 관계의 상처를 치유하기란 쉽지 않지만, 좋은 관계 안에서 5년 이상을 지내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존중받고 존중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내가 먼저 행복하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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