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어느 날 죽을 만큼 힘든 감정에 휩싸여 본 적이 있다면, 내일이 오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만일 살아 있으니 살아가고 있다면, 잠시 멈추어 쉬어가길 바란다. 포기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지 않은가.
얼마 전부터 나에게 매일 하는 말이 있다. “너 정말 잘했어. 넌 결국 살아남았구나. 너의 힘으로 행복해진 거야. 오늘도 멋지게 살자!” 살아 있어서 오늘을 만날 수 있었던 나에게 하는 칭찬이다. 하마터면 오늘 이 기분을 느껴보지 못하고 좀비가 될 뻔했다. 나는 오늘이 재밌고, 더 재밌어질 내일을 기대한다.
‘대학 입학’이 꿈이었던 여자아이.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어리석을 만큼 순진하게 자랐던 나는 헛똑똑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공부 조금 한 것으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바보는 정작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채 청소년기를 보내버렸다. 나는 대학 입학 이후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꼈지만, 회피와 도망을 선택하고 무기력한 20년을 시작해 버렸다. 그리고 마흔이 지날 무렵에야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20살에서 더 자라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은 자신을 마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고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이대로 반복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지 잠이 오지 않았고, 불안증이 심해져서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땀이 나고 입이 바짝 말랐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상대방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일은 곧 망할 거라는 생각보다 더 무서웠던 건, 내가 어느 날 두 딸을 남겨두고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15년 전 가족을 떠나 온 이후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을 향수병 정도로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고, 한 시간 거리에 여동생이 있는데 마음이 갑자기 왜 이런지 알 수 없었다. 알아내야 했다.
심리학과 상담을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차츰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에게 나에게 만족하지 못했고 불안정했다. 내가 선택한 삶을 책임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나는 정말 실패한 걸까.
생각이 과거로 향해 갈수록 우울은 점점 더 심해졌다. 후회의 순간들이 쌓였고,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즈음 엄마는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인정할 수 없었다. 엄마가 없는 나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암도 이겨낼 것 같던 엄마는 1년 반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지 못한 내 모습에 화가 났다. 난 왜 내 인생을 살지 못하지?
엄마가, 아빠가,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하며 살아온 인생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얼마 후다. 나를 찾아 나선 지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말로 우리가 백세 시대를 살게 된다면 아직 반도 못 왔는데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게 잘 살아보고 싶었다.
오래전 나는 어렸고, 어두웠다. 그리고 마흔한 살의 나는 여전히 어두웠고, 약해질 데로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더 안 좋았던 건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의 감정을 함께 느끼며 살아가는 두 딸이 옆에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로 그리고 다시 진짜 나로 살고 싶었던 내가 어떻게 두 번째 스무 살을 시작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인생이 실패라고 느껴진 순간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실패한 인생 자체를 포기하는 거다. 실패한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가면 된다. 다른 하나는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변화는 느리고 지루할지 모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지 않은가.
오늘 나는 머릿속이 가볍고, 마음이 단순하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는 당당한 나, 너무 멋지지 않은가. 바로 지금, 변화를 시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