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빠진 카레

#엄마 카레가 제일 맛있어

by 꿈꾸는 냥이

카레를 하려니 감자가 없다. 당근도 없네. 둘째가 감자볶음 만들어 놓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조금 샀구나! 어쩌지?'


하는 수 없이 양파와 고기만 넣은 카레를 만들었다. 양파는 익을수록 투명해지며 자신을 감춘다. 고기만 보이는 카레는 허전해 보였지만, 맛은 제법 카레스럽다.


딸들은 감자도 당근도 없는 카레에도 한 그릇 뚝딱이다. 엄마가 해주는 거라면 김칫국인 듯 찌개인 듯 정체불명의 김치찌개도 정말 맛있다며 호들갑이다. 일하는 엄마들은 먹거리에도 항상 미안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 냉장고엔 밑반찬이 없다. 간혹 배달을 시키거나 사 오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안 먹어진다. 몇 번 버리고 나니 이젠 사지 않게 되었다. 김치와 찌개 하나, 김치와 삼겹살, 김치와 국. 우리 집 식탁은 이런 식이다. 아! 계란이 있었다. 김치와 계란과 다른 것 하나. 우리 집 메뉴판이다.


아이들은 할머니 덕에 집밥을 잘 먹고 자랐다. "할머니 김치찜 먹고 싶어."라고 하면 그날 저녁은 김치찜이었다. 매일 먹고 싶은 걸 요구하며 아이는 사랑을 확인했던 건가.


어느새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다. 밀 키트를 고르고, 찌개를 끓여 놓는다. 엄마가 너무 피곤해 한 끼 거르겠다고 하면 얼른 밥을 해서 식탁을 차려준다. 그런 날은 눈물이 찔끔 나온다. 살만 하다.


한 없이 약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입을 다물게 된다. 생각도 멈춰버린다. 운전하는 시간은 한바탕 울기 좋다. 차에 혼자 있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차 안은 비밀 다락방이 되고, 참았던 감정을 풀어놓는 일기장이 된다.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것 같던 오늘, 엄마 카레가 최고라고 하는 딸의 칭찬에 다시 웃어본다. 내일은 길을 찾아 나갈 수 있겠지? 마녀의 힘을 믿어! 나는 점점 더 좋아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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