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현관 앞에 이게 놓여 있는데 뭐지?” “아! 그거 매실 액이죠? 아파트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갖다 놓는다고 했어요.”
퇴근해 집에 도착해보니 현관 앞에 작은 병과 상추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사전교감이 있었는지 청소하는 분이 갖다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파트 복도와 개별 현관 앞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아내와 나이가 같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하며 친근하게 지냈지요. 아내는 동갑네기라서인지 설이나 추석 명절은 물론 가끔 작은 선물을 챙겨주곤 했습니다. 그게 고마워서인지 아주머니도 가끔 시골에서 농사지은 야채 등 농산물을 현관 앞에 놓아두곤 했지요. 아주머니는 늘 온화한 얼굴로 입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정겹게 지냈습니다.
“여보! 나 오늘 점심약속 있어요.” “누구랑?” “18층 언니와 일전에 청소하던 아주머니랑 만나기로 했어요. 점심 먹고 올게요.”
우리 아파트에서 청소하던 아내의 동갑내기 아주머니가 아파트 청소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그만두었지요. 그런데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멀지 않은 인근 아파트 청소원으로 일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아내가 축하의 뜻으로 점심모임을 마련한 것입니다. 아무리 동갑내기라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추어탕을 먹기로 했다며 나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달라보였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지요. 아내는 주로 점심모임을 하는데 이 모임을 다른 모임보다 각별하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아내는 아파트 경비실에도 옥수수 같은 간식을 넣어드리곤 하지요.
지난 봄, 수원 영통의 ‘하우스 스토리’ 아파트 입주민들이 보여준 선행이 흐뭇한 미담으로 전해졌습니다. 8년 동안 아파트에서 일한 경비원 중 한분이 혈액 암으로 항암치료를 위해 퇴사 소식을 알렸지요. 이 소식을 접한 입주민들이 아파트 운영위원회 주관으로 보안대원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생겨났지요. 일주일간 진행된 모금운동에 1,000만원의 성금이 모아진 겁니다. 아파트 전체가 98세대인 작은 아파트 주민들이 보여준 큰 정성이었지요. 이 사실은 한 배달원이 ‘배달하다가 본 수원의 명품아파트’라는 글을 올려 알려졌습니다. 명품주민이 사는 명품아파트 맞지요.
아파트 이웃과 주차 문제로 다투다 이를 말리던 60대 경비원을 넘어뜨려 숨지게 한 20대 남성이 구속됐습니다. 다툼을 말리다 머리를 크게 다친 아파트 경비원이 숨진 것이지요. 지난 추석직전, 부산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20대 A씨가 다른 차량 운전자와 싸우다 이를 말리는 60대 경비원 B씨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습니다. 머리를 크게 다친 B씨는 뇌사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가 추석 다음날, 끝내 숨졌지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선 입주민의 갑 질에 견디다 못한 경비원이 자살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의 갑 질은 끊이지 않는 사회문제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동탄 신도시 한 아파트에서 17년 넘게 살고 있지요. 그동안 살면서 아파트 경비원들과 다투는 주민을 본 일이 없습니다. 경비원들도 만날 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돕는 등 입주민들과 잘 지내고 있지요. 아파트 관리원과 입주민은 갑을관계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관계이고 그들의 직장이 아파트 관리소일 따름이지요. 당당한 직장인이고 입주민과 수평적 관계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평수 넓고 비싼 아파트라고 명품아파트는 아니지요. 갑 질을 견디다 못해 경비원이 자살한 강남의 아파트보다 경비원의 혈액 암 치료비를 모금해 전달한 입주민이 사는 곳이 참 명품 아파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