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치있게 세상을 가치있게^^

by 홍승표

초등학생 시절 크레용을 준비 못하고 간 날, 선생님이 미술시험을 풍경화로 대체하겠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짝꿍의 크레용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그러자고 했지요. 고마웠습니다. 나름 그리기를 좋아하는 저는 자신 있게 스케치를 끝냈지요. 그런데 짝꿍이 힐끗 쳐다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자기보다 더 잘 그렸기 때문이었을 테지요. 다양한 색상의 크레용으로 그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짝꿍이 자꾸만 눈치를 주었기 때문이지요. 색을 제대로 입히지 못해 점수가 낮게 나올 걸 생각하니 속상했지만 눈물참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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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만 해도 학용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지요. 시골이니 농산물을 팔기 전에는 돈 구경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6,25 한국전쟁 직후였으니 대부분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를 힘겹게 꾸려가고 있었지요. 우리 집도 많지 않은 논밭을 일구며 6남매를 키우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식들 먹거리를 해결하고 공부시키는 게 거의 전쟁 같았던 시절이었지요. 여름방학 때,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아본 엄마가 미술점수가 너무 형편없다며 저를 바라보다 이내 밖으로 나가버리셨습니다. 크레용을 못 사준 게 생각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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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도 농사일을 도우며 공부하다 고3 여름방학 때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달포 남짓 죽어라 공부한 게 큰 선물로 돌아온 거지요. 광주군청에서 일하다 청운의 뜻을 품고 벼락치기로 공부해 전입시험을 치루고 경기도청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청에는 고시출신과 대졸자가 즐비했지요. 그렇다고 손 놓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를 하고 죽기 살기로 일을 했지요. 퇴근도 보안점검을 마치고 가장 늦게 했습니다. 열심히 일한다는 칭찬도 듣고 함께 일하자는 선배도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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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았고 ‘89년 6급주사로 승진했습니다. 시골 촌놈이 공직 15년차에 주사가 됐으니 나름 공직자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을 했지요. 곰곰이 지난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문득 크레용을 준비하지 못해 미술점수를 망쳤던 일이 떠올랐지요. 또한 지사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는 게 생각났습니다. 망설임 없이 소년소녀가장을 돕기로 마음먹었지요. 그게 36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30년 되던 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獻額)되는 사건(?)이 생겨난 이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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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사는 것과 잘 사는 건 다릅니다. 가진 게 많아 호화주택에 고급 승용차타고 명품사고 수시로 해외여행 다니는 건 그저 잘 먹고 사는 것이지요. 부러운 일이긴 하지만 존경받는 삶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웃을 위해 천 원 한 장 기부하지 않는 건 결코 잘 사는 게 아니지요. 넉넉하진 않아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내 돈 써가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존경받고 사랑받는 게 세상이치입니다. 우리가 직업으로 일하면 돈을 받지만 기부하고 봉사하면 선물을 받게 되지요. 이웃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선물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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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잘 사는 길이지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고 이러한 선한 영향력이 세상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합니다. 저는 경기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지요. 오랜 세월 祿俸으로 살았으니 이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게 바로 나를 돕는 것’이지요. 도움 받은 사람이 성공해서 또 다른 사람을 돕는 선한 영향력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듬어주는 ‘사랑의 나눔 릴레이’가 펼쳐지고 있지요. 그 사랑의 마음이 ‘나를 가치 있게,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인생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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