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필요한 순간
커머스 서비스가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저희 서비스는 커머스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커머스와 달리 상담 문의의 비중이 낮아 효율적인 문의 대응을 위해 전화상담이 아닌 실시간 채팅 상담만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최근 들어서는 ai 상담이 늘어나고 있어 전화상담으로 바로 연결되는 서비스는 물론이고 실시간 채팅 상담도 사실 찾아보기 힘들긴 합니다.)
저희 CX팀도 여느 서비스들처럼 흔히 말하는 악성고객들로 인해 채팅 상담 업무를 원활히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비속어 채팅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는데요.
CX팀은 이로 인해 해당 유저들을 차단할 수 있는 사용자 차단 기능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개발 리소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CX팀에서 원했던 사용자 차단 기능은 필요성이 인지되고 있어도 우선순위가 높은 작업이라고 하기 어려워 늘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리소스를 투입한다고 해도 바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고 기능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문제는 계속 반복될 테니까요.
전 리소스 문제보다도 사용자 차단 기능의 유용성에 더 초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유저의 비속어 채팅이 문제라는 CX팀의 문제 정의가 사용자 차단이라는 기능을 설계하기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느껴졌습니다. 정말 유저의 "비속어"가 문제라면 유저를 차단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유저가 비속어를 입력하지 못하는 기능을 제공할 수도 있고, 전송된 비속어를 CX팀이 볼 수 없도록 마스킹 처리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CX팀의 본질적인 문제와 불만을 이해하고 왜 그런 기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지를 파악해야 효율적인 방안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명확한 CX팀의 고충과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인터뷰 내용]
1. 이슈 발생 빈도수 확인
Q : 비속어 사용 채팅의 빈도수는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자주 그런 채팅을 받고 있는지?
A : 유독 많아지는 날이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등 날씨에 영향을 미쳐서 날이 흐리거나 좋지 않은 경우 조금 더 말이 세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나오는 수준이다.
2. 비속어 대응 방식 확인
Q : 현재 비속어 채팅 상담이 발생할 경우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있는지?
A : 경고를 하거나 답장을 하지 않는다. 더 이상의 응대가 필요 없는 경우(서비스 이용 제한 유저)가 대부분이라 아예 채팅을 보내지 못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3. 비속어가 발생하는 원인 파악
Q : 고객센터로 들어오는 문의들이 대체로 유저가 원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해결이 가능한지?
A : 유저가 원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을 전달하면서 비속어가 발생한다. 원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는 다른 유저와의 형평성을 위해 안 할 수도 있고, 우리의 시스템상 불가능하기도 하고, 해당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개발 리소스가 많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요구대로 해줄 수 없을 때,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비속어 채팅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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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자면,
1. 비속어 채팅 이슈는 하루 평균 약 1~2건 정도 발생하고,
2. 유저는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나 채팅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문의할 경우 비속어를 사용하며,
3. 불필요한 채팅(해결이 불가능한 이슈)으로 인한 업무 방해, 비속어 채팅 응대 소요시간이 길어짐에 따른 업무 리소스 낭비, 지속적인 비속어 사용으로 인한 불쾌감 유발 등의 이유로
CX팀은 사용자 차단 기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비속어 채팅을 하는 유저들의 다수가 서비스 이용 제한 유저라는 점
두 번째로, 비속어 채팅을 하는 유저들은 더 이상의 응대가 필요 없는 유저라는 점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라면 서비스 이용 제한 유저들의 서비스 이용 제한 범위를 늘려 채팅 문의자체를 불가능하도록 막는다면 많은 리소스를 들이지 않고 단시간에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약 해당 방안으로 해결이 어려운 경우, 두 번째 방안으로 비속어 채팅유저(추가적인 응대가 필요 없는 유저)와 응대가 필요한 유저를 분리시켜 상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면 될 것 같았고요.
하지만 실제 확인해 본 데이터는 인터뷰 내용과 다른 결과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비속어 채팅은 최근 6개월 기준으로 1주에 약 1.08명, 평균 2건(비속어 단어수 기준) 정도로 인터뷰 내용만큼 자주 발생한다고 말하긴 어려웠습니다.
저희는 서비스 특성상 문의가 A와 B 사이드로 나뉘어 유입되는데 A사이드의 경우 비속어 채팅 18개 중 15명이 서비스 이용제한 유저로 확인되어 비속어 채팅 유저의 다수가 서비스 이용 제한 유저라고 볼 수 있었지만, B사이드의 경우 비속어 채팅 30개 중 서비스 이용 제한 유저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첫 번째 해결방안이 효용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특히, 결과적으로 데이터를 통해 비속어 채팅 유저가 다른 문의로 인해 다시 고객센터를 재방문하는 행태를 확인하였습니다. A사이드의 경우 13.33% 정도, B사이드의 경우 33.33% 정도의 비율로 비속어 채팅 유저들이 고객센터를 재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속어 채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세웠던 가설과 해결방안이 모두 효용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도 비속어 채팅을 계속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근본적으로 CX팀의 고충을 해결을 위해서는 사용자를 차단해야 하는데, 해당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이기 때문에 해당 기능이 좋지 않은 서비스 경험을 제공해 서비스 만족도를 낮추게 될까 우려되어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CX팀의 업무 능률을 올리는 것도, 활성유저의 만족도를 유지시키는 것도 어느 하나 놓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결국 저는 데이터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1주에 1명 정도로 발생하는 비속어 채팅으로 인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며 고객센터를 재방문하는 33.33%, 13.33%의 사용자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CX팀의 고충 해결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저희 고객센터에 없었던 폭언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안내 문구를 제작해 채팅 시작 부근에 노출하기로 했습니다. 비속어 채팅 시, 상담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쉽게 비속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또한, 이후 발생하는 비속어 채팅 유저들에게 상담 중에 해당 문구를 지속적으로 전송하기로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당 문구 게시를 통해 3개월 동안 비속어 채팅 유입 수의 증감을 확인하고 다시 해결방안에 대해 논하고 사용자 차단 기능을 고려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에 따라 다시 사용자 차단 기능을 논하게 될 때에는 디테일한 데이터를 통해 조금 더 세부적으로 비속어 채팅 유저의 서비스 관여도를 판별하고, 만약 기능을 개발한다고 해도 구체적인 운영 정책을 통해 문제가 가중되지 않도록 조치해보려고 합니다.
비속어와 같은 악성 문의에 대한 고충은 어떤 산업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완벽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결정한 해결방안도, 결정하지 않았던 해결방안도 악성 유저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상황에 맞는 더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 계속해서 대처할 뿐입니다.
언제나 문제는 늘 한 번에 완벽히 해결해야 할 듯 보입니다. 여러 번에 걸쳐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건 시간 낭비, 리소스 낭비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한 번에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럴 때 객관적인 데이터와 수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데이터를 확인하지 못하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고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인터뷰 내용만을 토대로 사용자 차단 기능을 개발하는 해결방안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요? 반대로 저 혼자만의 판단으로 기능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했다면 CX팀에게 그 결정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려웠을 것입니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수치가 있었기에 문제를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당 문제를 꾸준히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기업에게 데이터는 목적 없이 쌓이는 듯 보이고, 불필요한 리소스 낭비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건 경험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가 활용되는 순간을 목격한다면 그 누구도 데이터에 대해 쉽게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