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말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배관 밸브회사였고 기술영업직이었다. 내 유학경험과 조선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비록 공백기가 6년이나 있었지만(유학 준비 + 유학 포함..) 나를 써줄지도 모르는 회사가 생겼다는 기쁜 마음에 열심히 준비해서 서울로 올라가 면접을 봤다.
나를 면접했던 기술영업직 팀장은 내가 영어도 꽤(?)하고 유학경험도 있어서 마케팅 팀이 더 잘 어울릴 거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2월 말에 마케팅 팀장과 다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 경험이 내 인생에 몇 번 되진 않지만 내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내 이력서만 봐도 열심히 산 것이 보인다며 칭찬 일색이었던 이런 면접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게도 마케팅 팀장도 유학경험이 있었고 한국-미국 장거리 연애를 한 경험이 있었다. 나의 미국 석사 때 학점을 보더니 얼마나 열심히 한 것이냐며 어느 누구도 물어봐주지 않던 나의 피나는 노력에 대해 질문했다. 면접을 마칠 때는 내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3월 최종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임테기에 두 줄이 떴다.
헤드헌터에게 물어보니 최종 면접에 올라간 사람은 나뿐이라고 했다. 큰 이변이 없다면 붙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사실 최종 면접 일주일 전에 임신임을 확인했는데 헤드헌터한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최종 면접이라도 보고 싶었다. 남편과 상의를 한 끝에 최종 면접에 합격을 하면 출산 휴가 3개월만 쉬겠다고 하며 회사에서 꼭 일을 하고 싶다는 걸 어필해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너무 간절했다.
인사팀장과 마지막 3차 면접을 보았다. 인사팀장은 내가 부산에 남편을 두고 혼자 서울까지 와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내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무조건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면접을 보고 헤드헌터에게 전화를 했다. 임신을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종 면접 결과가 나오면 회사에 이야기하고 싶다고, 출산 휴가를 3개월만 쓰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헤드헌터는 그럼 일단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했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그냥 최종 합격 결과가 나오기 전에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임신과 동시에... 회사에서 일하는 게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던 차라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헤드헌터한테 마침 전화가 왔다.
떨어지셨어요.
최종 결과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거라더니 어제 오후 3시에 최종 면접을 봤는데 그 다음날 오전 11시에 전화가 왔다. 헤드헌터가 아침 일찍 회사에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헤드헌터 입장에서도 임신을 한 사람을 회사에 소개한 꼴이 되니 미리 말을 하지 않으면 곤란할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임신을 한 사람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와 일을 하겠다고 하니 영 불편할 것이다. 차라리 서울 사는 다른 남자 사원을 뽑으면 될 일이다.
머리로는 이해되었지만 내 역량과 전혀 상관없이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인생이, 내 커리어가 멈춘 것 같아 억울했다.
임신을 하면 이렇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
너무 아쉬웠고 한동안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배 불러서 혼자 서울을 올라가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여러모로 타이밍이 아닌 것을.
다 가질 순 없는 것이다.
아쉽고 아쉬웠지만 이것이 희생인가. 엄마들이 한다는 그 희생의 시작인건가 싶었다.
입덧까진 아니지만 속이 니글니글 느글느글 너무 힘들고 힘이 하나도 없다.
일하고 싶다!! 고 했지만 이런 몸상태로 회사를 어찌 다녔을까 싶다.
회사 다니시는 임산부님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