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첫 가족여행
남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국내로 해외로 척척 가는 가족여행을 우리 가족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못 가보지 못했다. 우리 가족 서로가 그렇게 다정하지 않아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다들 나름대로 본인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에 바빴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 말로는 나와 내 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 경주로 1박 2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처음 가는 가족 여행이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시장을 3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장을 보셨다고. 아이스박스니 뭐니 짐을 가득 싣고 경주에 있는 콘도로 갔는데 아빠는 누워서 TV만 보시고 엄마 혼자 저녁상을 차려냈다고 한다(동생과 나는 둘이 노느라 바빴고). 그리고 그다음 날, 경주를 좀 돌아보려나 했는데 아침에 콘도를 나오자마자 아빠가 바로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고. 경주를 돌아볼 새도 없이 저녁에 콘도에서 밥만 하다가 끝난 가족여행에 엄마는 다시는 가족끼리 여행을 안 간다고 다짐하셨다. (그 이후로 실제로 단 한 번도 가족끼리 여행을 가지 않았다)
자상함, 무드라고는 모르던 우리 아빠가 나이가 드시니 이제야 소녀감성이 되셨다. 가족사진을 찍자, 가족 여행을 가자, 갑자기 가족 다 같이 계속 뭘 하자고 이야기하신다. 뜬금없이 서랍 저 구석에 넣어둔 가족사진을 찾지를 않나. 엄마는 그때마다 콧방귀를 뀌시며, "이제야?"라고 하셨다.
내가 미국에서 돌아왔고 동생이 싱가포르로 파견을 갈 예정이라, 동생이 떠나기 전에 가족여행을 가자라고 말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되어 20년 만에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빠도, 가기 싫다던 엄마도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그 시절의 아빠는 왜 그렇게 우리 3명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우리에게, 엄마에게 조금만 더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정말 좋았을 걸.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첫날에 펜션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방에 들어와 4명이서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새벽 1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가 피곤하여 일찍 주무실 줄 알았는데 계속 한 병 더 마시자 하였다. 무뚝뚝한 아빠에 한 맺힌 엄마 이야기, 동생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대학 안 가겠다고 했던 이야기(결국 가긴 갔다) 등등 20년 묵은 이야기를 털어놓자니 중간에 감정이 격해져 갑자기 싸우기도 했다. (갑자기 왜 싸우냐고 ㅋㅋㅋ)
그러다가 아빠가 할 말이 있으시다며 운을 떼시는데 갑자기 흐느끼며 우시는 것이었다. 내가 고2 때 아빠의 투자 실패로 월세살이를 시작하고 12년 만에 우리 집을 샀는데 그 이후로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으시다고 한다. 월세살이를 시작하고부터 아빠의 일도 잘 안 풀려서 10년 넘게 모두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이렇게 4명이서 여행을 오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으셨단다. 아빠의 눈물을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머지 3명 모두 숙연해졌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우리 가족이 그 어려웠던 시절보다 대단히 부자가 된 것도 아닌데, 경제적으로 정말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니. 동생도 취업을 하고 부모님 두 분도 그 연세에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시고, 집도 샀으니 통장에 돈이 많지는 않아도 다들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하다. 마음속에 있던 외로움 같은 것이 조금 채워지고 있는 기분이다. 이렇게 좋은 가족여행을 20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