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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Dec 24. 2022

21)기승전술,세라비!
起承轉酒,C'estLaVie!

081)폭탄주(爆彈酒)보다 과하주(過夏酒)

081)폭탄주(爆彈酒)보다 과하주(過夏酒)


술이 당기는 순간이 있다. 


나는 짧은 수필이든, 단편소설이든 끝을 장식하는 마침표를 찍고 나면, 술에 대한 그리움으로 영혼이 갈급해진다. 

 

-글쎄 나는 몇 살일까. 생의 순정이 불꽃처럼 빛나던 찰나의 총합이 나이라던데.-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으며 시계를 보니 마감시각에서 20시간 넘겼다. 


유격이 적은 노트북의 키보드를 세게 두드리는 버릇을 오랜 세월 지속했더니 손가락 관절이 망가진 것 같다. 노트북 자판은 어루만지듯이 살살 다뤄야 하는데도 나는 화풀이 하듯이 우다다다 팬다. 버릇 더하기 시간이 팔자라고 한다. 그러니 팔자소관이다. 

손가락을 주무르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박작가가 보내온 사진이 뜬다. 사진 속에는 양은 냄비에 담긴 까만 눈망울이 귀여운 복실강아지 두 마리와, 전통주가 분명한 술 한 병이 놓여있었다. 

이미지출처:㈜몬스터  네이버 카페


옴마 너무 귀여워라, 라고 사진에 입을 맞추려는데 딩동 연달아서 텍스트 문자가 떴다. 


“복날입니다. 오늘 출판사에 제 신간 표지디자인 결정하러 가는데, 시간되면 오세요. 한잔하게.”


지가 부른다고 내가 가냐, 라고 중얼거렸지만 나는 “ㅇㅇ”이라고 답장을 날리고 있었다. 박작가와 출판사 최대표는 제법 술맛을 돋울 줄 아는 술꾼들이다. 


“의사 선생님이 한동안 술을 마시지 말래요.”


내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감기 기운이 있는 듯한 최대표가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내 기억으로 그는 단 한 번도 내가 권한 술을 물렸던 적이 없는 친구, 술친구이다. 


“감기요? 여름감기는 멍멍댕댕이도 안 걸린다는데...”

그는 감기쯤으로 술을 거절하지는 않았었다. 언젠가 내가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며 다가오는 술잔에 손사래를 쳤을 때, 그는 독한 소주에 고춧가루 풀은 콩나물국을 권했었다.


그는 내 저서도 여러 권 출간했던 출판사 대표라 나와 동석한 술자리만 십 수 번은 된다. 


요즈음은 작가와 출판담당자가 대면하지 않고도 책이 출간되어 오프라인 서점의 서가에 진열되고, 독자는 온라인으로 바로 구입이 가능하지만, 옛날에는 작가가 출판사에 초고 넘기는 날 술 한 잔, 출판계약서 쓰는 날 한 잔, 작가가 교정과 편집을 검열하고 마지막 단계인 인쇄소로 넘기는 날 또 한 잔, 인쇄소에서 제본마치고 잉크 냄새 풍기며 신간서적이 나오는 날, 본격적으로 성대하게 마셨다. 


“아니, 건강상 심각한 무슨 일 있으세요? 설마 캔서는 아니죠?”

자발머리없게 불쑥 암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충수가 무언지 아세요?”

내말을 못 들었는지 그가 반문했다.


“충수란 맹장의 의학용어이지요.”

“충수절제술은요?”

일 더하기 일은 몇이죠, 라는 질문을 받은 기분이다. 귀요미, 아니 1 더하기 1은 2,맹장수술이라고 대답했다. 


“한 달 전에...”

“개복했어요?”

“개복요?”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운문을 쓰는 시인이 두 글자로 요약한 단어의 뜻을 모르면 쓰남. 나는 길게 산문으로 설명한다. 

“배를 갈랐냐고요. 요즘은 배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손전등처럼 불을 비추며 카메라 렌즈가 들어가서 가위 모양 집게로 염증생긴 맹장을 떼어 내죠.”


들어보니, 복강경 수술로 충수돌기를 절제하고, 한 달 전에 2일 동안 입원했다고 한다. 일주일 전도 아니고 한 달 전, 정확한 날짜를 짚어보니 50일 전이다. 


“한 달 전 복강경 맹장수술 때문에 오늘까지 금주?” 

“일 년 동안 금주하랍디다.”


“최 대표가 겁이 많구만. 혹시 1년 동안 부부관계 금지하라는 의사선상님의 요주의 수칙은 없었나요?”

옆에 있던 박 작가가 거들었다. 


“의사선상님께서 금주에 금연에, 처방약 복용하고, 화농예방 항생제 주사 맞고, 곁들여서 비타민C가 풍부하게 함유된 채소나 알약을 섭취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유산균제재도 복용하라고 했죠? 금기가 더 없었어요?” 


인간은, 제멋대로 진노하여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신을 달래기 위하여 태고 적부터 온갖 종류의 희생의 제물을 바치고 금기를 지켜왔다. 


환웅이 태백산의 신단수로 내려와 신시를 열었는데,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원하자, 신령스런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백일동안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하였다. 호랑이는 동굴 속에서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고, 곰은 백일을 버티고 여인 웅녀가 되었다. 환웅이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해서 단군을 낳았다


“일 년 동안, 신령스런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동굴에서 버티란 말씀은 안하시던가요?”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신처럼, 의사들은 수술 받은 환자에게 10가지도 모자라서 100가지쯤의 금기를 내린다. 병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혹은 악화되면 100가지의 금기 중 단 하나라도 이행하지 않은 환자에게 비겁하게도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맹장수술하고 이틀 만에 퇴원한 환자에게 일 년 동안 금주를 명령한 의사의 양심은 무슨 색깔일까. 


아니 그 의사선생님은 최대표의 절친일 수 있다. 최대표의 건강을 염려하여 ‘술 좀 작작 마시라고’ 내린 처방이리라. 


하지만 수술 한 두 달 후면 50킬로그램 역기도 들고, 백 미터를 15초안에 달린다. 일 년의 기간은 자신이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 조차도 까맣게 잊고도 남을 세월이다. 


3년 전에, 나도 복강경으로 담낭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날 검사를 위한 금식 시작 시각 직전까지 술자리에 취한 채 앉아있었다. 그리고 3박4일 입원을 했고, 3일 가료 후에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난 개복 수술하고도 퇴원 일 주일 만에 술 마셨는데요.”

사실은 3일 만에 마셨는데, 일주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의사가 술 마셔도 된다 했어요?”

고개를 갸웃하며 박작가가 묻는다. 


“금기 식품으로 술에 대한 언급이 없었어요. 배 가르는 수술 받은 중환자가 일주일 만에 술 마시리라고는 당연히 짐작도 못하겠지요.” 


악마가 공사가 다망하여 용무가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을 때, 술을 보낸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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